서울 구석구석, 역사를 간직한 정자들
서울에는 창덕궁, 경복궁 등 고궁뿐 아니라 한강변과 산, 공원에 역사를 담은 정자(亭子)가 자리잡고 있다.
정선이 그림 그리던 '소악루'… 효자가 시묘살이하던 '효사정'
전란·홍수 등으로 사라져 후대에 복원한 것이 대부분
서울시, 이정표·진입로 정비해 문화관광 명소로 만들기로
서울 구석구석에는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정자(亭子)가 많다.
'정(亭)'은 '경치가 좋은 곳에서 놀기 위해 지은 집'이란 뜻이다.
창덕궁 내 소요정(逍遙亭), 경복궁 안 향원정(香遠亭),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洗劍亭) 등이 잘 알려진 조선시대 정자들이다. 서울 시내 대부분 정자는 수많은 전란(戰亂) 통에 사라져 후대에 사료를 토대로 복원한 것들이 많다.
합정동 양화진 인근 망원정(望遠亭)은 조선 세종 6년(1424년)에 세종 형인 효령대군이 지었다고 알려졌다. 당시에는 희우정(喜雨亭)이었는데 가뭄에 고통을 겪던 중 세종이 농민들 형편을 살피기 위해 이 근방을 찾았다가 마침 비가 내려 기쁜 마음에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이후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정자를 고치면서 '망원정'으로 바꾸었다. 지금 건물은 1925년 큰 홍수로 없어졌다가 1989년 복원한 것이다. 정면에는 '망원정', 안쪽에는 '희우정'이라는 현판이 함께 붙어 있다.
강서구 가양동 궁산에 놓인 소악루(小岳樓)에서는 인왕산·남산·관악산과 한강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원래 이곳엔 중국 동정호 악양루에 버금간다 하여 '작은 악양루'로 불리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영조시대 동북 현감 이유가 소악루를 만들었다. 화가인 겸재 정선이 이곳에 올라 그림을 그린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 소악루는 1994년 복원한 것으로, 원래 자리(가양동 산6-4 세숫대바위)에서 옮겨 왔다.
자양동 현대강변아파트 안에 있는 낙천정(樂天亭)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거했던 궁 안에 1419년 지었다고 전해온다. 원래는 한강 북안(北岸) 대산에 있었다. 지금 정자는 1991년 대산 근처에 주택공사 과정에서 다시 지어진 것이다. 낙천정은 주역의 '樂天知命故不憂(천명을 알아 즐기노니 근심하지 않는다)'에서 이름을 따왔다. 태종과 세종이 매사냥을 했고, 세종 1년 대마도를 정벌하고 축하연을 벌였던 곳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동작구 흑석동 효사정(孝思亭)은 세종 때 우의정까지 지낸 노한대감이 모친상을 당하자 이곳에 장지를 마련해, 그 옆에 초막을 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던 곳이다. 지금 정자는 1993년 흑석동 한강변을 낀 언덕에 새로 세웠다.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 안에 위치한 황학정(黃鶴亭)은 고종이 활쏘기를 장려하고자 만든 사정(射亭)이다. 조선 때 이런 사정은 서울에 많았지만 지금은 9개만 남아 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군대 무기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사라졌다.
조선시대 한강변 높은 곳에는 자연을 벗 삼던 정자가 많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표석만 남아있는 곳이 적지 않다.
한남대교 북단 고려시대 절터였던 곳에 조선 성종 때 황희 손자사위 김국광이 짓고, 이후 조선 말 민영휘 별장으로 사용되던 천일정(天一亭)이라는 정자는 6·25 폭격으로 표석만 남아 있다.
세종 14년(1432) 광진구 화양동 낙천정 북쪽에 세워진 화양정(華陽亭)은 말들이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대한 정자였다고 하나 1911년 낙뢰로 무너지고 느티나무공원 안에 표석만 있다.
현대에 지어진 정자도 꽤 있다.
성동구 응봉동 응봉산에 있는 응봉산정(鷹峰山亭)은 1987년 2층형의 전통 한식목조로 지었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고, 서울숲 등 주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봄이 오면 개나리가 산을 뒤덮는다.
선유도공원에 있는 선유정(仙遊亭)은 옛 선유도에 영복정 등 정자가 많았다는 기록에 따라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만들었다. 창덕궁 내 취규정 형태를 참고하여 지었다.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고자 세운 양천구 용왕정(龍王亭)은 용왕산 정상에 있다. 옛 지명은 엄지산. 1994년 조선 중기 건축 형태로 지었고, 월드컵경기장, 평화의 공원, 하늘공원 등이 눈 앞에 펼쳐진다.
목동 오목교에서 안양천변을 끼고 목동운동장 쪽으로 향하다 보면 영학정(永鶴亭)을 만날 수 있다.
서울시는 각 자치구에서 지역 내 정자들 이정표나 진입로를 정비하고,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시설 등을 마련해 문화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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