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몹시 악한 사람을 일러 「도척이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 이는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9천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나라 안을 휩쓸며 악한 짓을 한 유명한 도둑 도척에 비유하여 생긴 일종의 욕이다.
엣날 백제의 도읍지 공주에 한 게으름뱅이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끼니를 굶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일할 생각은 안하고 때가 되면 이집 저집 문전걸식을 하면서 자란 탓인지 그는 청년이 되어서도 놀면서 얻어먹으며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다 그는 마음씨까지 아주 고약했다.
어느 날 아침 게으름뱅이 청년은 늦잠을 자고 난 뒤 밥 얻으러 가는 일마저 귀찮아 엊저녁에 먹다 남은 찬밥 덩이를 먹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스님 한 분이 찾아와 시주를 구했다.
『지나가는 객승입니다. 아침밥을 굶어 몹시 시장해서 그러니 밥을 좀 나눠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흥! 딴 데 가서 알아보슈. 남는 밥이 있으면 뒀다가 점심에 내가 먹겠소.』
욕심쟁이 청년은 자기도 배고픔을 겪고 있으면서도 남의 배고픈 심정은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욕설을 퍼부었다.
스님은 돌아가면서 뭔가 주문을 외우듯 입 속으로 외웠다.
그러자 밥을 먹던 청년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뒹굴기 시작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사람 좀 살려주세요.』스님은 이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이 마을 의원 박노인이 청년의 집 앞을 지나게 됐다. 인정이 많은 박노인은 얼른 청년의 집으로 들어가 그에게 침을 놓고 약을 먹였다. 얼마 후 배아픈 것이 가라앉고 몸이 거뜬해지자 마음씨 고약한 청년은 엉큼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그 영감 돈을 울거내면 평생 동안 편히 먹을 수 있을 거야, 히히.』
청년은 박영감 집으로 찾아갔다.
『영감, 당신은 내 병을 고쳐준다고 내게 약을 먹이고 침을 놓아준 뒤 우리 집에 모아 둔 돈 1만냥을 훔쳐갔지? 만약 내놓지 않으면 관가에 알려 혼을 내줄 테니 좋게 말할 때 얼른 내놓으시오.』
『이런 고얀 녀석 봤나. 목숨을 구해 줬더니 이제 와서 고맙다고 인사는 커녕 날 도둑으로 몰다니….』
박노인은 하도 어이가 없어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게으름뱅이 청년은 원님한테로 갔다.
『저는 비록 구걸을 해서 먹을지언정 얻은 돈을 아끼고 아껴 그간 일만냥을 저축해서 저의 집 항아리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한데 이 사실을 안 박노인이 제가 아픈 틈을 타서 제게 약을 주는 등 친절을 베풀고는 정신을 잃은 사이에 제 돈을 모두 훔쳐갔습니다.』
『소인은 평생 동안 의술을 인술로 삼아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도왔지 한 번도 누구를 해친 일이 없습니다. 이번 일은 참으로 억울하오니 사또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박노인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청년이 먹다 남은 약을 내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니 원님은 그만 속고 말았다.
『의원 박씨는 청년에게 만냥을 돌려주도록 하라.』
박노인은 좋은 일을 하고도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됐다. 반면에 게으름뱅이 못된 청년은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됐다.
청년은 좋은 집으로 옮겨 거드름을 피우며 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이웃에게 선심을 쓰는 척 이잣돈을 빌려주고는 제 날짜에 갚지 않으면 가산을 빼앗아 오는 등 날이 갈수록 심한 횡포를 부렸다.
좋은 집에서 잘 입고 잘살게 된 게으름뱅이는 이제 장가가 들고 싶었다.
청년은 가세가 기울어져 가는 이생원집 딸 달래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성질이 급한 그는 직접 생원집을 찾아갔다.
『소인 가진 것은 많지 않으나 이제부터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제가 가을 농사를 거둘 때까지 댁에서 필요한 식량을 대어드릴 터이니 부담없이 받아주시지요.』
이웃 마을까지 평이 좋지 않은 청년이 찾아와 뜻밖의 선심을 베풀자 이생원은 어안이 벙벙했다.
『제가 그냥 드린다면 어른께서 받지 않으실 테니 이자는 그만두시고 가을에 능력껏 상환하도록 하시지요.』
무슨 속셈인가 싶어 사양하던 이생원은 살림이 워낙 궁색한지라 그만 청년 집에서 쌀 한 섬을 가져왔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니 청년은 빌려준 쌀 한섬을 독촉했다. 그러나 워낙 어려운 살림에다 흉년까지 들어 생원 집에서는 갚을 길이 없어 내년으로 미뤘다.
『정 안되시면 댁의 따님을 저와 혼인토록 하여 주십시오.』
막무가내인 청년의 생떼에 이생원은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였다. 밖에서 시주를 구하는 염불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얼마 전 청년 집에 왔던 노스님이 서 있었다.
놀란 청년은 주인을 제쳐 놓고 스님 앞으로 달려갔다.
『잘 만났소. 지난번 당신이 다녀간 뒤로 내가 죽을 뻔했는데 이번엔 또 나를 어떻게 해치려고 예까지 쫓아왔소?』
『소승 몹시 시장하여 한 끼 식사를 좀 부탁하려는 참이오.』
『거짓말 마시오.』
청년은 재빨리 몽둥이를 높이 쳐들고는 스님을 향해 내리쳤다.
스님은 피할 생각도 않고 태연히 염불만 욀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님을 향해 높이 쳐든 청년의 팔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 청년은 서서히 바위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마음을 쓰지 않으면 개 돼지나 다름없는 법. 게으름뱅이 청년 너는 네 죗값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까지 그렇게 바위로 서 있거라.』
스님은 이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훌쩍 가 버렸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도척이 바위」라 불렀는데 지금도 공주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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