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복습 자료 - 사찰의 건축물(1)

難勝 2007. 11. 27. 06:12
 

사찰건축물들을 전각(殿閣)이라고 하는데, 전각은 안에 모셔진 불상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합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모셔진 곳들은 전(殿)이라 붙이며,그 외 건물은 각(閣)이라고 합니다.


(1) 산문(山門)


사찰은 거룩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청정하고도 장엄한 곳이며 스님들이 머물면서 수행하는 터전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닦고 올바른 삶을 다짐하는 곳도 여기며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전법의 주요 공간도 이곳이다.

사찰의 중심인 큰 법당에 들어서려면 산문(山門), 일주문(一柱門), 금강문(金剛門), 천왕문(天王文), 해탈문(解脫門)을 지나야 하는데, 이러한 문들을 일컬어 산문(山門)이라 한다.

하지만, 일주문 앞에 별도의 산문(山門)을 통상 세우기도 한다. 산문은 승가과 속가의 경계이며, 청정한 수행공간인 사찰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직지사 등 대찰에 가보면 일주문 가기전에 사찰 초입에 큰 문이 있는데, 이것이 산문이다.

이 산문이나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찰 초입에 통상 스님들의 부도밭과 사찰의 유래를 적은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2) 일주문(一柱門)


통상 사찰입구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門)이다. 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심(一心)을 뜻한다. 사찰의 입구에 일주문을 세운 것은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向)하라는 뜻에서이다.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불도를 닦는 사람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와 진리를 생각하면서 일주문을 지나야 한다고 한다.


(3) 천왕문(天王門)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타난다. 천왕문은 부처님과 불법과 스님과 불자들을 수호하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건물이다. 천왕문은 외부의 악한 기운이나 침입자로부터 사찰을 보호하여 청정도량으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사천왕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서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이 그것이다.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용(龍), 지국천왕(持國天王)은 검(劍),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비파(琵琶), 광목천왕(廣目天王)은 탑(塔)을 들고 있다. 사천왕을 사대천왕(四大天王)·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욕계육천(欲界六天)의 최하위를 차지한다.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4) 금강문(金剛門)


천왕문의 좌우측 대문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려져 있습니다. 금강역사는 코끼리보다 수십배 이상의 엄청난 힘을 소유한 천하장사로, 이 강력한 힘으로 사찰을 수호하는 기능을 맞고 있다. 그래서 금강문이라는 별도의 문을 갖춘 사찰도 있는데, 이 곳에는 금강역사가 조각이나 그림으로 조성되어 있다. 좌우측에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모셔져 있다.


(5) 불이문(不二門) = 해탈문(解脫門)


천왕문을 지나 길을 오르면 다시 불이문(不二門)이 나타난다. 이 문은 번뇌의 속된 마음을 돌려서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하며, 궁극적으로 번뇌와 해탈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불이문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해탈문은 누각 밑을 통과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2층의 다락집 형태인 누각 밑 1층 기둥 사이로 길이 나 있어 문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2층 누각은 불법을 설하는 강당으로 쓰여 왔다. 그래서 진입하는 쪽에서 보면 문이요 진입하고 난 뒤 법당 쪽에서 보

면 누각으로 다가온다.

해탈문을 지나면 보제루 또는 만세루가 있으며, 이를 지나면 절마당을 만나고, 바로 대웅전이나 대적광전같은 사찰의 중심 법당이 보인다. 그리고 법당 앞마당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말씀인 경전을 간직한 탑이 우뚝 서 있다. 양쪽에는 각종 전각이나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6) 만세루(萬歲樓) = 보제루(普濟樓) = 강당(講堂) = 설법전(說法殿)


강당은 불교의 교설을 강의하는 곳으로 조선시대의 선종에서는 법당이라 불렸다. 신라 때까지는 모든 절에 강당이 반드시 있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법당 앞에 있는 만세루 또는 보제루 등의 누각(樓閣)이 강당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모든 설법은 원칙적으로 이 곳에서 행해졌다. 그래서 '설법전(說法殿)'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