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원주불교대학 대학원 강의 - 보조국사 법어(眞心正信)

難勝 2008. 3. 8. 19:58

참 마음은 바른 믿음[眞心正信]


화엄경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로 일체의 선근(善根)을 길러낸다.”

하였고, 또 유식(唯識)에는,

“믿음은 물을 맑히는 구슬과 같나니 흐린 물을 능히 맑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로써 온갖 선이 발생하는 데에는 믿음이 그 길잡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불경 첫 머리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쓴 것도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조사문의 믿음은 교문의 믿음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답하였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동일하지 않다.

교문에서는 사람과 하늘들로 하여금 인과(因果)를 믿게 한다.

즉 복락(福樂)을 좋아하는 이는 십선(十善)이 묘한 인(因)이 되고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즐거운 과(果)가 된다고 믿으며, 비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이는 생멸의 인연이 바른 인이 되고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성인의 과라 믿으며, 불과(佛果)를 좋아하는 이는 삼겁(三劫)의 육도(六度)가 큰 인이 되고 보리와 열반이 바른 과가 됨을 믿는다.


그러나, 조사문의 바른 믿음은 앞의 것과 다르다.

일체 유위(有爲)의 인과를 믿지 않고 다만 자기가 본래 부처라,


천진(天眞)의 제 성이 사람마다에 갖추어져 있고 열반의 묘한 본체가 낱낱에 원만히 이루어졌으므로 다른 데 구하려 하지 않고 원래 저절로 갖추어졌음을 믿는 것이다.


삼조(三祖) 스님은,

<원만하기는 허공과 같아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지마는 다만 취하고 버리는 생각 때문에 그와 같지 않다.>고 하였다.


또 지공(誌公)은 <상(相)이 있는 몸 가운데 상이 없는 몸이요, 무명의 길 위에 생멸 없는 길이다.>고 하였다.


또 영가(永嘉) 스님은,

<무명의 실성(實性)이 곧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바로 법의 몸이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알겠다.

이미 바른 마음을 내었을진대 모름지기 또 앎을 늘리어야 한다.


영명(永明) 스님은,

<믿기만 하고 알지 못하면 무명이 더욱 자라고, 알기만 하고 믿지 않으면 사뙨 견해가 더욱 자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믿음과 앎을 겸해야 도에 빨리 들어갈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물었다.

“처음으로 신심을 내어 도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이익이 있는가?”


나는 답하였다.

“기신론에,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듣고 겁내거나 약한 마음을 내지 않으면, 그는 결정코 부처 종자를 이어 받아 반드시 모든 부처의 수기(授記)를 받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안에 가득 찬 중생을 교화하여 십선을 행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잠깐이나마 이 법을 바로 생각하면 이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많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 반야경에는,

<한 생각 동안만이라도 깨끗한 믿음을 내면 부처는 그를 다 알고 본다.

그러므로 그 중생은 그런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천리를 가려면 첫걸음이 빨라야 하나니, 첫걸음이 어긋나면 천리가 다 어긋남을 알아야 한다.


무위(無爲)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첫 믿음이 발라야 하나니, 첫 믿음을 잃으면 온갖 선이 다 무너진다. 그러므로 조사가,

<털끝만큼 어긋나면 하늘과 땅처럼 멀어진다>

고 한 것이 바로 이 이치이다.”

 

3월 8일 구룡사 심검당에서 원행 스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