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강의(10)-반야의 위대한 주문
본문: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해석(解釋):고로 알라. 반야바라밀다는 위대하고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견줄 데 없는 주문이다. 능히 일체의 고뇌를 제거하며 진실하여 헛되지 않다.
강설(講說):삼세제불께서 반야바라밀다에 의해 무상정등정각의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으셨고 般若智가 완성되었습니다. 즉 반야의 본체가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반야의 본체가 되신 삼세제불의 말씀을 가리켜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无上呪 是无等等呪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야는 大神呪으로써 이 우주 만물을 주관하는 절대신이고, 또한 반야는 시대명주로써 한없이 맑고 밝은 빛이고, 또한 반야는 시무상주로써 이 우주 안에 반야바라밀다를 능가하는 어떠한 진리도, 말씀도 없고, 또한 반야는 시무등등주로써 이 세상에서 이 반야바라밀다와 비교할 어떠한 신도, 진언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大神呪이며, 이것이 大明呪이며, 이것이 無上呪이며, 이것이 等等呪라'고 네 종류의 '주문'을 말씀하신 것은, 이 반야바라밀다는 부처님의 가장 참된 말씀이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즉, 이 반야바라밀다가 그대로 다라니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언이며, 이것이 주문입니다. 그래서 이 반야의 공덕을 네 가지로 설명하고 찬탄한 것이 여기에 있는 이 네 가지 주문입니다. 제일 먼저 '이것이 大神呪'라 한 것은, 영묘불가사의(靈妙不可思議)의 뜻으로, 말하자면 즉, 보통 우리들 인간의 천박한 지식으로서는 쉽사리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영묘불가사의의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대신주는 중생들이 다 갖추고 있는 마음의 心呪이며 역시 중생들의 心地法門입니다.
만트라(Mantra)는 보통 주(呪), 명주(明呪), 진언(眞言)이라고 번역합니다. 만트라(Mantra)는 바라문 출신의 수행 승려들에 의해서 불교 교단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불타는 처음에 이것을 금했으나, 나중에는 毒死․齒痛․腹痛등의 치유를 위해서는 주문의 사용을 허가하였습니다. 대승 불교에서는 다라니(陀羅尼, dhāranī)와 병행해서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특히 밀교(密敎)에서는, 만트라 다라니(dhāranī)는 진리 그 자체라고 존중되었으며,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구송(口誦)합니다.
여래의 진실한 말이라고 해서 진언(眞言)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이것이 大明呪'라 함은, 明이라는 것은 광명의 명이니, 이 반야의 진언이야말로 밝게 빛나는 부처님의 신성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呪는 삼천대천 세계를 두루 덮고 그 광명이 밝게 빛나 시방세계를 널리 비추면서 법계를 감싸고 있는 大光明藏이니, 日月보다 더 밝아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이를 대명주라 한 것입니다. 또 '이것이 無上呪'라 함은, 이 위에 다시없는 최고의 주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呪가 제일이니 다른 神呪로써 이보다 더 나으려 해도 마침내 미치지 못합니다. 일체의 만법이 이 마음의 心呪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능히 넘을 수가 없으므로 이를 無上呪라 한 것입니다. 또 '이것이 等等呪'라 함은, 도저히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주문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네 종류의 주문은 반야바라밀다는 이 세상에 있어, 가장 우수한, 무엇에 비교할 수가 없는 불가사의의 공덕을 가진 진언으로서, 이 속에는 일체 모든 부처님의 설하신 바 가르치심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옛 사람은 이 네 종류의 주문을 '성문'과 '연각'과 '보살'과 '부처님'의 진언이라 해서 네 종류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문'과 '연각'은 소승이며, '보살'과 '부처님'은 대승이니, 결국 대소승 일체의 불교는 모두 이 '반야바라밀다'라고 하는 하나의 주문에 포함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교에는 여러 종지와 종파가 있으나, 그것이 모두 불교인 이상, 여러 각도에서 또는 여러 방면에서 이 '반야의 주문'을 설명하고 해설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 주문의 '呪'라고 하는 글자는 입구(口) 변에 형(兄)이라고 하는 자입니다. 보통 이 呪라는 글자는 '저주합니다' 즉 '원망합니다'는 뜻으로 씌어지고, 또 동시에 '주문을 외운다' 즉 예방을 한다는 뜻으로 씌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상한 주문을 외운다든가, 기도로 병을 고친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병자를 의사에게 보이지 않고, 약을 쓰지도 않아 마침내 죽게 하는 미신과 사교에 미혹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진언비밀법'이니 해서 이상한 기도를 한다든가, 이상한 술법으로 기도를 올려서 병을 고친다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선동해서 금품을 사취하는 사실이 시중에 횡행하고 있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불교의 기도는 그러한 천박한 미신적인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면 신성하고도 참된 기도란 어떠한 것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정당한 기도는, 인간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바의 능력 요소를 급속도로 체득하고 발휘하여, 자기의 신념을 실천하고자 수법 정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류 발전에 있어, 정당한 서원 목표를 세우고, 가장 공명정대하고도 평화스러운 종교적 의식대로 기도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장소, 시간 등도 공개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혹 단독으로 할 경우에는 자신의 편리한 장소와 시간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교역자가 신도를 지도할 경우에는 공명정대한 장소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항간에 기도를 빙자로 하여 공포심을 준다든가, 비밀장소에서 야심을 이용하여 한다든가, 지나친 기도 댓가의 물질을 요구한다든가 하는 것은 미신적 행위이며, 비종교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기도의 효과는 어떠한 것인가. 기도는 자기 반성과 아울러 자기의 결의를 굳게 하고, 동시에 실천하는 단계에 있어, 불보살의 대자대비의 가피가 있어 소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지극 정성으로 드리는 올바른 기도 공덕은 반드시 나타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이 '지성이면 감천이라'함은 이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대체로 이 주문이라고 하는 '주(呪)'자는 눈으로 보는 감각조차도 그리 유쾌한 것은 못됩니다.
세상에서는 '주'라고 하면, 곧 미신을 연상하도록 경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번 불교의 전문용어로서 사용될 때에는, 극히 심원하고도 귀중한 뜻을 가지게 됩니다. 이 주(呪)라는 글자는 범어의 만트라를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진언 또는 다라니라는 말과 꼭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언이란 '참된 말씀'입니다. 참된 말씀이란, 신성해서 어길 수 없는 말씀입니다. 우리들 범부 중생의 말에는 거짓이 많으나, 부처님 말씀에는 결코 거짓됨이 없습니다.
여기에 다라니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이것도 범어로서, 번역하면 모든 것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즉 경전의 모든 요소로 한 글자에 무량의 뜻과 일체의 공덕을 다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진언이나 다라니나 주문이 대체로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말하자면 신성한 부처님의 말씀, 그 말씀 속에는 실로 무량의 공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도 특히 진언밀교에서는 이 주문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어느 때 일본 백은(白隱)선사는 설법중에 열심히 염불을 하고 있는 노인을 불러서 물어 보았습니다.
'노인께서 그렇게 염불을 열심히 부르시는데, 무엇이 성취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인이 대답하기를 '스님, 이렇게 염불을 하는 것은 범부 중생이 성불하는 주문입니다.'고 했습니다. 선사는 다시 '아미타불께서는 지금 극락에 계신가요.' 하고 물어 보니
노인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스님, 아미타불께서는 지금 극락에 안 계십니다.
아미타불께서는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여행 중에 있습니다.
백은 선사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노인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스님, 아미타불께서는 지금 여기 와 계십니다.' 하면서 자기 가슴에 손을 대는 것이었습니다.
백은선사는 이 말에 깊이 탄복하였다 합니다.
우리들이 목적하는 바 이상의 세계는 결국 반야의 세계인 것입니다. 반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있지만 목적지는 결국 꼭 같은 것입니다. '반야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낳고,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반야를 설하시다'라고 옛 사람은 말씀했지만 성불하겠다는 불교의 이상은 반야의 세계로 도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만약에 참으로 관세음보살처럼 반야의 지혜를 닦아서 여실히 이것을 실천하고 실행한다면, 자기의 괴로움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의 모든 괴로움까지라도 다 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말하여 '능히 일체의 고를 제하고 진실하여 헛되지 않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불허입니다. 거짓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참 진리라고 믿고 이것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는 앞에서도 거듭 말씀드린 바와 같이 피안으로 건너가는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일체의 인연이라고 깨닫는 바의 지혜이므로, 결국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아는 것이 이 반야의 지혜입니다. 일찌기 세존께서는 '인연'이라는 말을 깨달음으로 해서 깨침의 부처님이 되신 것이니, 우리들도 또한 이 '인연'을 참으로 알게 됨으로 해서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연을 알게 되면은 인연을 죽이지 않고, 인연을 잘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살리는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일체 모든 공의 진리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이 아무 것도 없는 허무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유'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공이니, 우리들 인간의 생활은 공에 철저함으로, 유의 존재를 훌륭히 살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참으로 공을 체념하고, 공을 각오하는 사람에 의해서만 비로써 인생의 귀중한 가치가 인식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야의 지혜를 닦아서 우리 스스로의 괴로움을 벗어버리는 동시에, 일체 모든 괴로운 사람들의 영혼을 또한 구해주는, 공에 철저한 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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