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원주불교대학 강의노트 - 부파불교의 형성과정

難勝 2008. 11. 4. 06:42

2007. 7. 21 불교교리(문무왕 교수님) 강의 요약입니다.

강의가 주로 교재 읽기로 진행되었고, 다음 강의 때 요약본 배부하신다고 해서 금일

강의<대승불교의 교리>의 전 단계인 <부파불교의 형성 과정>을 요약해 드립니다.


근본분열(根本分裂) - 대중부와 상좌부의 형성

불멸 후 100년 경, 제 2 결집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불교교단은 중인도의 테두리를 넘어 서방으로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바이샬리의 비구들이 정법(淨法, 계율에 어긋나지 않음. 합법적인 일)이라 하여 시행하고 있는 10가지 문제에 대해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서인도 출신의 야샤스라는 비구가 마가다지방의 바이샬리로 갔을 때 그는 비구들이 쇠로 만든 발우에 물을 채우고 상가를 위한다고 하면서 금전, 은전을 집어넣는 것을 보고 경악하였다. 본래 무일물(無一物)을 표방하는 비구는 금전을 받는 것은 물론, 손을 대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유행편력의 생활에서 승원생활로 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서인도의 비구들에게 금전을 받는 것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관행이었다. 야샤스는 그것이 비법(非法)임을 지적하였으나 바이샬리의 비구들로부터 빈축을 사게되어, 서방의 비구들에게 응원을 청하였다.

야샤스는 이 비구들의 도움을 받아 금전을 받는 행위 등을 포함한 여러가지 일에 대해 동, 서의 불교교단이 대화할 기회를 마련하였다. 양쪽에서 각각 4명씩 판정인을 내세워 심의를 하였는데, 결국 이 자리에 모인 700명의 장로들은 이 문제를 포함한 십사(十事)를 비법으로 단정하였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었던 10사는 각 율전에 따라 다른 점이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뿔로 만든 그릇에 소금(을 축적하는) 관행(角鹽淨)

2. (수행자는 정오가 지나면 식사해서는 안되는데, 정오를 지나 해 그림자가) 손가락 두 마디 정    도를 지난 시간까지 식사시간을 연장하는) 관행(二指淨)

3. 다른 부락(에 가서 음식을 취하는) 관행(他聚落淨)

4. (동일한 교구 안의 다른) 주처(에서 포살을 따로이 행하는) 관행(住處淨)

5. (일을 결정함에 우연히 비구가 전원 모이지 않아, 먼저 참석한 사람들로 결정을 하고 뒤에 늦    게 온 사람들의) 동의(를 예상하여 정족수가 부족하여도 의결을 행하는) 관행(隨意行)

6. (석존과 아사리의 )습관(에 따르는) 관행(久住淨)

7. (식사 후에도) 응고하지 않은 우유(를 마시는) 관행 (生和合淨)

8. (나무나 열매의 즙을 발효시켜 아직 알콜이 되지 않은) 음료를 마시는 관행 (飮門樓伽酒淨)

9. 테두리에 장식이 없는 방석(의 크기에 관한) 관행 (無緣坐具淨)

10. 금,은(을 받는) 관행(金銀淨)


이상의 십사는 그 일이 크건 작건 실제적 필요성이 대두되어 당시의 교단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열번째의 금전을 받을 것인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테마였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바이샬리의 논쟁을 기록한 여러 율을 검토하여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불교교단의 발전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10사의 논쟁은 야사가 서방의 비구들에게 응원을 요청했기 때문에 동서비구의 싸움이 되었던 것 같지만, 동쪽의 비구들 중에도 10사에 반대한 비구가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계율을 융통성있게 지키고 예외를 인정하려고 하는 관용파(지법자,持法者)의 비구와 끝까지 계율을 엄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엄격파(지율자,持律者) 비구들간의 대립이었다고 볼수 있다. 불타가 입멸한 지 100년 쯤 되면 상가의 확대와 함께 비구의 수도 늘어나고 사고방식의 차이도 생기기 때문에, 교단에 이러한 대립이 일어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회의에서는 엄격파의 주장이 전면적으로 통과된 듯 한데, 이것은 장로비구들 중에서 엄격파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장로비구가 대표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10사는 모두 '비사(非事)'로 판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비구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이것이 교단분열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즉, 이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비구들이 모여 대중부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로써 교단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했다고 한다. 이것을 '근본분열(根本分裂)'이라고 한다. 대중부에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명칭에 관용파 비구들의 수가 많았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북방불교에 전해진 자료(이부종륜론)에 따르면 근본분열의 원인은 대천이라는 비구가 아라한의 경지에 관하여 밝힌 다섯 가지 견해에 대한 대립(大天의 五事)에 의한 것이라 한다. 다섯 가지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여소유(余所有) ; 천마에게 유혹당할 때는 아라한일지라도 더러움이 새어나갈 때가 있다.

2. 무지(無知) ; 아라한에게도 무지는 있다.

3. 유예(猶豫) ; 아라한에게도 의문이나 의혹은 남아있다

4. 타령입(他令入) ; 자신이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을 타인이 알려줌으로써 아는 경우가 있다.

5. 도인성고기(道因聲故起) ; 도는 소리에 의해 일어난다.


이 五事는 상좌부 교단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성자인 아라한을 비방한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해 교단의 화합이 위협받자 당시의 왕이 중재를 위해 집회를 열어주었다. 이때 표결에 의해 다수를 차지한 대천의 무리는 스스로 큰 집단임을 의미하는 대중부라고 자파를 명명하였고, 반면 소수파인 보수적 장로들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기로 공포하고 스스로를 상좌부라 칭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근본분열에 의해 한번 갈라진 교단은 다시 그 내부에서 분열을 계속하여 20개의 부파로 분립하게 된다. 이를 지말분열(枝末分裂)이라 하는데 당시의 분파를 남, 북 양전이 전하는 내용에 따라 명칭은 약간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