騎牛歸家(기우귀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곽암칙화상(廓庵則和尙)
[序]
[원 문] 곽암칙화상(廓庵則和尙)
간과이파....득실환공........
干戈已罷에 得失還空이라.
창초자지촌가.......취아동지야곡........신횡우상.......목시운소........호환불회.......노룡부주
唱樵子之村歌하고 吹兒童之野曲하여 身橫牛上하고 目視雲소하니 呼喚不回하고 撈籠不住로다.
[譯]
간과(干戈) 이미 끝(罷)나니, 득실 또한 공이라. 초자(樵子)의 시골 노래를 부르며, 아동의 야곡을 불(吹)며, 몸을 소 등에 올려놓고 하늘(雲소)을 쳐다보며,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끌어내도 서지 않는다.
[해 설]
잘 기른 소를 내 것으로 하여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단계다. 산에 들어가 소를 잘 길들였으므로 타도 뿌리치지 않고 채찍질할 필요도 없다.
부처님도 산에 들어가 수행을 하고 산에 주저앉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려고 산에서 나오셨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다. 무기물(無機物)도 움직이고 있다. 변천하고 있다. 등에 업힐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믿을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 생사를 해탈해야겠다. 그래서 좌선공부하고 생사를 해탈해서 다시 무상세계에 돌아오면 무상세계가 실상(實相)의 세계가 된다. 이렇게 움직여 가는 생활 가운데가 열반의 정토가 된다. 그래서 본래에 돌아오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다.
소 등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소 없다. 이 말은 소를 타고 그 소와 한 몸이 되면 소를 탔다는 자신도 없어지려니와 소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소에서 떨어지면 상하지나 않을까 이런 생각과는 반대다. 자기자신이 소가 되었는데 떨어지고 상할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깨치면(無에 들면) 무(無)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윗단계에서 소를 먹였으니(牧牛) 배가 잔뜩 불러서 본가로 돌아간다. 본가란 깨친 자리다. 원래 소(진리)와 사람은 한 몸이었다. 그래서 깨치고 보니 별 것이 아니고, 시계는 시계고 펜은 펜이라는 여실세계였다.
시골 사람이(나뭇꾼) 소를 타고 노래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표현했다(樵子之村家).
깨치기까지에는 노래부를 여유가 없다. 5단계에서 소를 먹일 때에는 그를 먹이느라고 갖은 애를 다 쓰게 되니 노래 부를 겨를이 있을 리 없지만 이제는 먹일대로 다 먹여 배가 잔뜩 부르니 노래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소를 타고 하늘을 쳐다보니 천하에는 아무 것도 구할 것이 없다.
돈도 필요 없고 고관대작도 필요없다. 천하가 모두 내 것인 이상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소 등에 앉아, 천하를 두루 살피니 내것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까 구하지 않아도 주어진다. 이러한 경지가 「기우귀가(騎牛歸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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