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불교의 교단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難勝 2008. 12. 13. 05:44

불교의 교단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석가모니(釋迦牟尼)가 베나레스에서 다섯 비구에게 한 첫 설법은 깨달은 바를 논리정연하게 체계를 세워 정리한 철저히 준비된 설법이었다. 설법대상도 난해한 법을 충분히 이해할 바탕이 있다고 확신하여 선정한 대상이었다.

이 첫 설법을 시작으로 위로는 국왕·크샤트리아 그리고 무수한 브라만의 교학자·철학자로부터 아래로는 무지몽매한 천민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계층을 대상으로 죽음을 비롯한 인생살이 등 광범위한 문제에 관해 아주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였다. 석존은 늘 설법의 대상(청중)에 맞추어 현실 속의 비유로 법을 설해준다. 이른바 대기설법(對機說法)인 것이다.

이렇게 대상에 맞는 현세적인 비유를 통해 지극히 합리적인 설법으로 잠깐 동안에 1천 명의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즉 최초의 다섯 비구를 시작으로 베나레스에서 귀의 출가한 부호의 아들 야사와 그의 부모와 처를 최초의 재가신도로 받아 들임으로써 불교의 교단이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야사의 아버지가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을 때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주듯이, 가려져 있던 것을 열어 보이듯이,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일러 주듯이,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 놓고 ‘눈 있는 자는 보라’고 하셨듯이 세존께서는 갖가지 방편으로 법을 나타내셨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세존과 세존께서 설하신 법과 그리고 세존을 따르는 대중들에게 귀의하겠다. 바라옵건대 저를 신자로서 받아주십시오. 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귀의(歸依)하여 받들겠다.”하고 간청하자 석존께서 이를 허락하시니 이것이 곧 신앙의 고백이며 수계(受戒)의 예법인 ‘삼귀의(三歸依)’인 것이다.

삼귀의란 부처님, 부처님이 설하신 법, 그리고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교단의 세 가지를 믿고 의지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상(無上)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삼보(三寶)에 귀의함으로써 입교(入敎)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야사의 출가는 당시 베나레스 상류사회의 귀공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야사의 귀의로 그의 친구 네 사람을 비롯하여 50여 명이 집단으로 출가해서 교단은 커지기 시작했다. 석존은 그들에게 각 지방으로 가서 법을 전하라고 부촉(咐囑)하고 자신도 베나레스를 떠나 남쪽의 마가다국 라즈그라하를 향해 길을 떠났다. 라즈그라하로 가는 도중 마가다국 안에서 가장 큰 교단을 거느리고 있던 카샤파(迦葉) 삼형제를 교화시켜 제자로 삼으니 단번에 천여 명을 거느린 교단이 되었다. 라즈그라하에서는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석존께 귀의하고, 도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벨루와나(죽림정사)를 바쳤다. 이것이 불교사원의 시작인 것이다. 이 무렵 상수(上首)제자가 된 사리푸트라(舍利弗), 목갈라야나(目楗連)를 비롯한 그 일행 250여 명이 함께 귀의하는 등 라즈그라하는 사실상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석존은 바이샬리를 거쳐 다시 자신의 고향인 카필라밧투로 가서 석가족의 많은 귀공자들을 교화시켰다. 사촌인 아난다를 비롯하여 아니룻다·데바닷다 등 후일 유명해진 제자들이 귀의하였고, 열두 살이던 석존의 외아들, 라훌라도 머리를 깎고 제자가 되었다. 석존의 이모이며 어린 석존을 양육했던 마하파자파티가 최초의 비구니가 된 데 이어 석존의 비(妃)였던 아쇼다라를 비롯한 많은 귀족의 여인들이 출가해서 비구니교단이 성립되었다. 이로써 불교의 교단은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남자 신도인 우파사카(우바새:優婆塞), 여자 신도인 우파시카(우바이:優婆夷)의 4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많은 수의 비구·비구니들이 집단으로 수행하게 되자 집단의 질서를 바로잡고 통솔하기 위해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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