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국수 한 사발

難勝 2009. 4. 14. 04:06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장가를 들었다.

  처갓집은 글깨나 하는 집이라서 식구들 모두 장가드는 새신랑의

  글 짓는 것을 보자고 야단이었다.

 

     하지만 새신랑은 글을 지을 만한 재주가 없었다. 

  소문을 익히 들은 신랑의 아버지는 처갓집 사람들에게

  비웃음이나 면하라고 글 잘 하는 사람을 상객으로 딸려 보내면서

  이렇게 일렀다.

     "우리 애의 말을 시로 옮겨서 비웃음을 당하지 않도록 해주시오."

 

     대례를 치르고 그 다음날 쉬는데 아니나다를까

  큰 상을 차려 놓고 처남이며 처갓집 사람들이며 모두

  새사위 글 짓는 솜씨를 보겠다고 모여 앉았다. 

 

  사방을 두루 살피던 신랑은 천장의 거미집을 보았다.

     "천장에 거미집이요."

 

     그러자 상객은 얼른 한시로 옮겼다.

     "천장거무집(天長去無執)"

      하늘이 넓고 길어 가서 잡을 수 없다.

 

     멋도 모르는 사람들은 문장 솜씨에 탄복했다.  그 다음에

  마당을 보니까 화로에서 검불내(연기)가 올라 오고 있었다.

     "화로에 검불내."

 

     상객은 그 말도 얼른 옮겼다.

     "花老蝶不來 (화로접불래)"

      꽃이 늙으니 나비가 오지 않는다.

 

     그리고 큰상을 보니 국수가 한 사발 놓여 있었다.

     "국수한사발"

   

     그러자 상객이 이렇게 옮겼다.

     "菊秀寒士發 (국수한사발)"

      국화는 청빈한 선비 모양으로 깨끗이 피었구나.

 

     신이난 신랑은 보이는 대로 읊었다.

     "강정, 빈사과, 대추, 복숭아."

  

     이렇게 외치자 상객은 이것을 즉시 한시로 옮겼다.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정빈사과 대취복송하)."

      강가의 정자 앞을 청빈한 선비가 지나가다

      크게 술에 취해서 소나무 밑에 엎어졌구나.

 

     이렇게 거침없이 읊어대자 처갓집 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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