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김유신 장군의 첫 사랑과 천관사

難勝 2009. 10. 30. 05:07

김유신 장군의 첫 사랑과 천관사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신라의 명장 김유신장군 어머니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엄한 훈계를 했다. 특히 벗과 사귀는 일을 경계하여 아무 친구나 함부로 사귀지 못하게 했다.

서라벌 산등성마다 진달래가 붉게 타는 어느 봄날 오후. 청년 김유신은 막 외출준비를 하려는데 내당으로부터 어머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도련님, 마님께서 속히 내당으로 들라고하십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더냐?”

“잘 모르긴 하오나 마님표정이...”

“음, 알았다”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초리는 평소보다 더 근엄했다.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들의 모습을 본 유신의 어머니는 마음을 가라앉힌 듯 조용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네가 기생 천관에 빠져 매일 그 집엘 드나든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그게 사실이냐?”

시인이라도 하는 듯 아들이 말이 없자 유신의머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에미는 이제 늙었다.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장가도 안든 네가 그런 천한 여자들과 어울려 음탕한 술집에서 히히덕거리며 논다니 내 마음이 못시 언짢구나. 내 마지막 소원은 네가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임금과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고 나라의 대들보가 되길 바랄 뿐이다”

말을 마친 유신의 어머니는 옷고름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백발이 희끗희끗한 노모의 눈물을 보는 순간 유신은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어머님 . 금후로는 다시 그 집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심려치 마옵소서”

“오냐, 그래야지”

어머니는 아들의 결심이 고마운 듯 유신의 두손을 꼭 잡았다.

유신의 어머니는 등에 7개의 별점을 지니고 태어난 아들이 장성하면 꼭 나라의 큰 재목이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토록 믿음직스런 아들이 기방출입이 잦다는 소문을 듣고는 대경실색하여 즉시 아들을 불러 타이른 것이다. 유신은 곧 잘못을 뉘우치고 어머니 앞에서 굳은 맹세를 하니 노모는 아들의 효심이 무척 고맙고 대견하기만 했다.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유신은 심신수련에만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보고픈 정을 누르면 누를수록 솟고 쳤다.

자기도 모르게 천관의 집으로 옮겨지는 발길을 중간에서 옮긴 것만도 여러 차례, 그럴 때마다 유신은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을 다랬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벗과 만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자 친구는 천관의 말을 건넸다.

“자네 요즘 천관의 집에 발 그림조차도 안한다며?”

“어머님이 저토록 걱정하시는데 내 그 어른 말씀을 거역할 수 있겠나?”

“아무튼 자네 결심이 대단하구먼. 두 사람 정이 보통 깊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유신의 가슴이 아픈 듯 그냥 술잔만 기울였다.

“자네는 심신을 수련하느라 정신을 한곳으로 쏟을 수 있지만, 앉으나 서나 자네만 기다리며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해 몸져 누운 천관의 모습은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네”

친구의 말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유신은 계속 술잔을 비우며 밤이 으슥 하도록 마셨다.

“여보게, 이제 그만 마시고 돌아가세. 너무 취했네“

친구는 유신을 부축하여 말위에 태우고는 해어졌다.

정신을 잃은 주인을 태운 말은 옛날 다니던 길로 곧장 접어들어 천관의 집에 다다랐다.

“아니, 도련님....”

꿈에도 그리던 연인이 한밤중 술에 대취하여 찾아오다니, 천관은 기쁨과 원망이 섞인 감회의 눈물을 흘리며 유신을 맞이했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깬 유신은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뽑아들고는 사랑하는 말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나 되옵니다. 도련님. 말을 처하시려거든 대신 소녀의 목을 치옵소서”

천관이 놀라 따라나서며 간곡히 말렸으나 유신의 귀에는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유신은 결연히 칼을 뽑아 자신의 몸처럼 아끼던 말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오고 말았다.

천관은 유신의 그 단호한 결행에 원망하는 시한수를 읊고는 그 길로 출가의 길을 올랐다. 그녀는 비록 머리는 깍았으나 김유신에 대한 그리움과 사모하는 정은 끊을 수가 없었다. 그 후 천관은 공부가 깊어지자 김유신 장군의 그 결행을 이해하는 눈이 열려 옛 연인을 위해 기도하다 어느 해 가을 입적했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큰 그릇이 되라”는 어머님의 간곡한 당부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을 버린 김유신 장군은 평생 천관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유신은 자신을 사랑하다 먼저 명을 달리한 천관의 넋을 달래고 왕생극락을 비는 애틋한 마음에서 그녀가 살던 옛집에 절을 세웠다. 그리고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을 천관사라 명했다.

태종 무열왕의 셋 째 딸 즉 누이동생의 딸(조카) 지소부인과 결혼한 김유신 장군은 오랜 세월 독신으로 있다가 50세 가량 돼서 결혼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는 필시 천관에 대한 깊은 사랑에 연유했을 것으로 후세인들은 말하고 있다.

도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조에는 장군의 다섯 아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어머니를 알 수 없는 군승이라는 서자가 있었다는데 그는 아마 천관의 아들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경주 오릉동편 낮은 구릉지대.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수로를 따라 3백미터 지점에 이르면 장군과 기생의 천년 사랑이야기를 입증 하는 듯 폐탑의 기석과 덮개돌들이 발이랑 사이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