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백중 아침에 드리는 나옹화상 이야기 - 어머님을 천도하다

難勝 2010. 8. 24. 05:20

 

 

불교 4대 명절중 하나인 백중(우란분절)입니다.

 

조상천도 기도를 올리는 분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不二門이라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살아도 영원한 삶은 없거니와 죽어도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기도는 참회로부터 시작합니다.

참회에 들어갔을 때 이 기도가 성취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일심으로 기도에 들어가서 참회를 할 수 있다면 영가의 한이 서린 마음도 풀 수 있고 우리의 서원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어머님을 천도한 목련존자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려 시대의 유명한 나옹 스님도 어머님을 천도한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나옹 스님은 지금으로부터 6백여년전, 고려 공민왕 때 왕사를 지낸 스님으로 법명은 혜근이고, 속명은 원혜요, 당호는 강월헌 입니다.

 

나옹 화상은 어느 날, 봄눈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길을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양주땅 회암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이천 영월암이 있는 설봉산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이때 어디선가 가까이서 울리는 요령 소리가 스님의 귓전을 스쳤고, 곧 초라한 장의행렬과 마주쳤습니다.

상여도 상주도 없이 늙수구레한 영감이 요령을 흔들며 상여소리를 구슬피 메기고 그 뒤엔 장정 하나가 지게에 관을 메고 무거운 듯 힘겹게 걷고 있었습니다.

바로 뒤에는 2명의 장정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행렬은 스님을 보자 한쪽으로 비켜가면서 허리를 굽혔습니다.

스님이 물었습니다.

“누가 갔는데 이처럼 격식도 갖추지 못하고 장사지냅니까?”

그 중 한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아랫마을 돌이어멈이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참 안됐구먼 얼마 전 아들을 잃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나무 관세음보살.”

스님은 마지막 가는 돌이어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염불을 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마음마저 착잡한 스님은 출가 전 자신이 고뇌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스님의 나이 스무 살 때였습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고 약속한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던 것입니다

비통에 잠긴 나옹은‘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어른들을 찾아가 수없이 되풀이 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벗과의 사별을 인생의 근본 문제로 받아들인 나옹은 그 길로 공덕산의 요연 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했습니다.

 

어느 날 요연스님이 나옹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온 물건이 무엇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으나 보려 하여도 볼 수가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습니까?”

이 말에 요연 스님은 나옹의 공부가 보통 정도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으라.”하고 다른 스님을 찾아가 공부하도록 하였습니다.

 

나옹 스님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3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앉아서 용맹정진을 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1347년 중국으로 구법의 길을 떠났고, 원나라의 연길 법원사에 도착하여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스님 지공화상을 만나 크게 깨달았습니다.

 

2년간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처림이란 곳에서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친견하던 스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아올랐으나 스님은 출가사문의 본분을 내세워 멀리서 극락왕생을 기원할 뿐이었습니다. 나옹스님은 돌이어멈의 장례행렬을 통해 불현듯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머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스님은 선정에 들어 어머님의 행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나옹스님의 어머니 정씨는 뜻밖에도 인도 환생하지 못하고 무주고혼이 되어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49일 안에 다른 세상에 환생하여 새로운 몸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더러는 다른 몸을 받지 못하고 허공중에 떠돌게 되는데 이런 영혼을 중음신이라고 합니다. 스님은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님에 대해 그토록 무관심했던 자신의 불효가 한스러웠습니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터우시길래 구천을 헤매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이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스님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스님은 지옥고에 허덕이는 어머님을 제도한 목련존자를 생각하며 어머님을 천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지장보살님 앞에서 어머님의 천도를 기원하는 천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옥의 중생까지도 제도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어머님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나옹 스님의 독경은 간절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기 49일째가 되던 날, 나옹스님은 철야정진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새벽녘 아침 동이 트기 전, 나옹스님은 지장보살님의 전신에서 환한 금빛 광채가 비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눈부신 자비의 방광이었습니다.

지장보살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듯했습니다.

 

고통 받는 지옥 중생 때문에 지옥 문전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장보살님이 어머님을 천도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 지장보살님께서 내 기도에 감응하시어 눈물로써 현현하고 계시는구나.’

스님은 어머님의 천도가 이루어졌다는 확신을 갖고 기도를 마쳤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선실에서 입정하여 이미 하늘나라에 왕생하신 어머님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영월암 지장보살님 앞에는 선망부모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옹 스님은 영월암에서 14년 동안 수행하시면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신도를 교화하시다가 여주 신륵사에서 57로 입적하셨습니다.

 

나옹 스님이 기도를 올린 마애지장보살상은 지난 1984년 12월 보물 제 822호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목련 존자나 나옹스님처럼 신통력을 갖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네 부모님이나 조상님들이 지금 어느 곳에 계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극락왕생 하셨거나 천국에 태어나셨거나 인도 환생하셨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그러나 만에 하나 삼악도에 떨어져서 갖은 고통을 받고 계시거나 무주고혼으로 구천을 헤매고 있다면 이 얼마나 애통한 일이겠습니까?

또 그 영혼들이 여러분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부모님 조상님들만이 아니라 나와 인연을 맺고 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우리가 천도할 대상은 단지 악업을 짓고 악도에 윤회하는 망자들만은 아닙니다. 한이 많아서 구천을 헤매는 원혼들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6.25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어 수많은 생명이 한을 품은 채 이생을 하직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또 요즘은 교통사고 등으로 비명횡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산아제한이라는 미명아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어린 생명들이 세상 구경도 못하고 한을 품은 채 다른 세계로 윤회하고 있습니다.

우란분재는 이런 모든 망자들을 불보살님의 가피지력으로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베푸는 의식입니다.

나 혼자만 행복하면 그만이 아니라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생명체가 다 같이 잘 살자는 불사입니다.

따라서 우란분재는 모든 생명을 내 몸 같이 생각하는 동체대비심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불자여러분!

목련 존자는 살아생전에 악업을 짓고 악도에서 고통 받는 어머니를 위해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스님들의 안거가 끝나는 날을 택해 우란분재를 베풀었습니다.

그 공덕으로 존자의 어머니는 악도를 벗어나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천도’는 단지 부처님의 가피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불보살님의 위신력 만으로 모든 중생을 이고득락 시킬 수 있다면 우란분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요, 지옥 문전에서 눈물 흘리시는 지장보살님은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삼악도는 이미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목련 존자에게 굳이 우란분재를 7월 보름이라는 특정일에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통해서 천도하도록 한 데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 한 분의 능력보다는 여러 사람의 정성이 한데 모이면 그 힘이 더 큰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의 이 깊은 뜻을 되새기면서 여러 불자님들의 조상, 친척뿐만 아니라 삼악도의 모든 중생들에게 불보살님의 가피가 골고루 미치도록 기원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