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구걸기도(求乞祈禱)와 발원기도(發願祈禱)

難勝 2010. 11. 8. 05:06

 

  

 

구걸기도(求乞祈禱)와 발원기도(發願祈禱)

 

타력신앙의 기도는 ‘~주십시요’라고 하는 구걸형기도

자력신앙의 기도는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발원형기도

 

기도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기독교의 ‘~주십시요’라고 하는 기도가 연상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교회 한번 다녀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션스쿨에 배정 되어서 기독교 경험을 하게 되는 사람들도 매우 많을 것이다. 거기에서 느끼는 점은 기도할 때 무언가를 달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수도 없이 무언가를 달라고 기도하는 대상인 그들이 믿는 신은 전지전능함에 틀림없을 것이다.

 

종교를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종교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신본주의 종교를 타력신앙이라 하고 인본주의 종교를 자력신앙의 종교라 부른다. 대표적인 타력신앙의 종교가 기독교이고 자력신앙의 종교가 불교임은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타력신앙의 종교와 자력신앙의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도 할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타력신앙의 기도의 내용은 ‘~주십시요’하는 구걸형이고 자력신앙의 기도는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발원형이라는 것이다.

 

구걸형과 발원형기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해당 종교의 교리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주종관계가 명확한 종교는 종의 입장에서 주인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기도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반면에 자신이 주인인 종교의 기도 내용은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는 내용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교리에 따라서 기도 내용이 바뀌는 엄청난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현대사회에서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와 같다고 비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자각의 종교인 불교는 절대자에 의지 하여 일방적으로 달라고 하는 구걸형 기도를 매우 천박하게 생각한다. 어린아이가 울며불며 떼쓰는 기도와 같은 구걸형 기도는 불교의 근본 교리와도 맞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고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기도로는 역시 발원형 기도가 가장 잘 어울린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은 과거 노예시대나 봉건시대와 같은 주종 관계가 명확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창조해 가는데 더 익숙해 있다. 노예근성으로 21세기를 살기에는 너무나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주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와 노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비록 같은 공기를 호흡 하고 있을지라도 그 맛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