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촌 신흠의 군자·소인론
상촌 신흠(象村申欽ㆍ1566-1628)은 조선조 중기의 뛰어난 문인학자로, 월사 이정구(月沙李庭龜)ㆍ계곡 장유(谿谷張維)ㆍ택당 이식(澤堂李植)과 함께 문장사가(文章四家)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다. 벼슬이 영의정에 오른 정치가이면서, 상수학(象數學)과 유ㆍ불ㆍ도를 넘나드는 회통사상(會通思想)으로 심학(心學)을 종합한 철학자였다. 상촌이 52살 때 유배지에서 썼다는 저술 가운데 <구정록(求正錄>은 옥사(獄事)로 쫓겨나고 유배당한 10년 동안의 가난과 고통 속에서 쓴 산문집으로, 특히 심학(心學)과 노장(老壯) 사상으로 현실 정치사회를 비판하는 글들이 격조 높다.
"사물의 이치를 두루 궁구(窮究)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나의 마음에 대해서는 스스로 깨달아 이를[了達] 수 있으니, 마음을 깨달아 이르는 것이 바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모습이고,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며, 알 수 있는 것은 그 처음이고, 알 수 없는 것은 그 마지막이며,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바깥이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안이다. 속마음이 바르고 안의 행실을 닦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되면, 군자(君子)의 도가 어지간히 성취되었다고 할 만하다."(<국역 상촌선생집>51권, <구정록>)
조선 전기와 후기가 교차하는 시대를 살며, 이 글은 심학으로 이룩되는 학문 방법과 반성적 자세를 논했다. 7살의 어린 나이로 양친을 잃고 고군분투하며, 스스로 터득한 삶과 학문의 반성적 지혜들이 이 글들에 갈무리되어 있다. 벼슬에서 쫓겨나 오랜 동안 전원에 살면서 현실 생활을 정리한 글이라고 하며, 사물을 두루 살펴 심학의 이치로 군자의 도를 밝혀 주었다.
이렇게 사물의 찌꺼기인 문자를 벗어나, 사물 그 자체에서 이치를 깨닫기를 촉구하는 뜻은 <잡저(雜著)>와 <야언(野言)>등 여러 글에서도 군자/소인론으로 이어졌다.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군자이고,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소인이다. 몸을 참으로 성실하게 살핀다면 자기의 허물이 날마다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겨를에 남의 허물을 살피겠는가? 남의 허물을 살피는 사람은 자기 몸을 성실하게 살피지 않는 자이다. 자기 허물은 용서하고 남의 허물만 알며, 자기 허물은 묵과하고 남의 허물만 들추어낸다면 이야말로 큰 허물이다."(<검신편(檢身篇)>)
"시골 마을에서 오막살이 하면서 거친 옷에 짚신을 신고 다니는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친구를 구할 적엔 먼저 그 사람됨이 괜찮은가를 살펴, 어질면 사귀고 그렇지 않으면 사귀지 않는다. 그런데 하물며 한 나라가 나라 사람이 모두 추하게 여기는 자를 관리로 앉혀 놓고 웅대한 계획을 세우게 하다니."(<사습편(士習篇)>)
17세기 초반 조선 주자학의 황금기를 나무랐던 상촌의 시대비판은 지금 우리의 소인 문명에도 통렬한 꾸짖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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