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눈 오는 날의 물레질

難勝 2010. 12. 10. 05:53

 

목화송이 쏟아지듯 눈이 내린다.

 

겨울의 막바지에 하염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면, 더구나 이렇게 해 질 녘에 내리는 눈을 보면 고향집 건넌방 아궁이에 마른 솔가지 한 단 풀어놓고 군불을 지피던 추억이 떠오른다.

코 묻은 아이들 두엇이 앉아서 두런거리고 잿불에 설익은 고구마를 꺼내 먹느라고 주둥이에 검댕을 묻히고 앉아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귀에 아련하다.

이런 저녁이면 방 안에서는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가 짤가닥짤가닥 이어지고 누군가의 아이 부르는 소리가 눈발에 흩어지고 있을 그런 풍경이다.

 

저렇게 쏟아지는 눈을 보고 청나라의 대시인 심덕잠(沈德潛 1673~1769, 중국 청나라의 문학자·시인) 같은 이는 매화꽃이 쏟아진다고 했다.

시인의 눈에는 그럴 법도 한 눈송이다.

그러나 배가 고픈 사람은 백설기 떡이나 흰쌀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고 염전(鹽田) 근처에 사는 사람은 소금을 뿌리는 것 같다고도 할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오죽 생각이 많으랴만 앞산 뒷산 숲에 소리 없이 내려 가지에 소복소복 쌓이는 눈송이를 보면 나는 어린 시절 방 안에 가득하던 목화솜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마당에, 자동차 보닛 위에 그리고 나뭇가지에 소복소복 쌓인 눈을 보면서 목화솜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아마 내가 유달리 추위를 타기 때문일 것이다.

 

무명베 한 필이 되기까지는......

 

어린 시절 이 무렵쯤 설날이 가까워 오면 마을 어머니들의 베짜는 손이 훨씬 더 바빠진다.

집안 식구들의 설빔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어린아이들의 발걸음도 한결 바빠지게 된다.

새 옷 한 벌 얻어 입으려면 스물 몇 가지가 넘는 베틀의 그 많은 부품 중에 부족한 것을 이웃집에 다니면서 빌려오려면 마당에 삽살개 뛰어다니듯 서둘러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맨 처음 시작하는 일이 가으내 거둬서 마루 한 켠에 쌓아두었던 목화 보퉁이를 풀어서 밤새 씨아를 돌려 씨앗을 발라내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이튿날 읍내 솜집에 가서 눈송이처럼 하얀 솜을 타 온다.

이것을 식구대로 둘러앉아 목화고치를 만든다.

목화고치란 가늘고 긴 막대기에 솜을 뭉쳐 도마처럼 생긴 말판에 굴리고 문질러 방망이처럼 둥글고 길게 만든 것이다.

목화고치의 한끝을 손가락에 침을 발라 도르르 말면서 실마리를 뽑아낸 후 이것을 물렛가락에 감는다.

물렛가락은 목화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젓가락 같은 꼬챙이를 말한다.

물레를 천천히 돌리면 이 물렛가락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이 나오듯 목화고치에서 실이 뽑아져 나온다.

 

이렇게 뽑아져 나온 실을 열 가닥씩 세어서 묶는데 40가닥을 한 ‘새’라고부른다.

추운 때 입어야 하는 가늘고 고운 무명 배는 일곱 새,여름에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굵은 삼배는 대개 다섯 새를 잡아서 짜게 된다.

일곱 새라는 말은 열 가닥짜리 실 네 묶음을 일곱 번 곱한 것이니까 280가닥의 실이 모아진 것을 말한다.

실 묶음을 길게 간추리는 것을 베를 난다고 하고 이렇게 모아진 실 다발을 삶아서 말리고 다시 묽은 풀질을 하며 잿불에 말리는 것을 베를 멘다고 한다.

그래야 실이 부풀지 않고 가늘면서도 질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실의 한쪽 끝은 끄실코라고 하는 돌을 얹어 끌어당길 수 있는 말뚝에 메고 풀질해서 마른쪽은 도투마리에 감는다.

이때 실이 엉겨 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이사이에 사침대를 넣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투마리는 긴 나무판자의 양쪽에 눈이 내리는 날 눈을 치우는 넉가래처럼 사각형의 판자를 남겨 두고 가운데를 자루처럼 파낸 것을 말한다.

그래서 “도투마리 잘라서 넉가래 만들기”라는 속담이 있듯이 가운데 자루 부분만 톱으로 자르면 그대로눈 치우는 넉가래가 된다는 뜻으로 별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할수 있는 일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 280개의 실 하나하나를 참빗처럼 촘촘한 바디(또는 보디) 의 날에 일일이 꿰고 이것을 한 개 걸러 하나씩 두 쪽으로 나누어 한 폭은 잉아에 건다.

잉아 신을 신은 발로 잉아 끈을 잡아 당겼다 놓았다 하면 실 한 폭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북이 드나들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를 오른손과 왼손이 번갈아 북을 밀고 바디집을 잡아채면서 다지면 베가 되어 가는데 이것을 베를 짠다고 한다.

 

이때 북에 들어가는 실을 씨줄 또는 위사(緯絲)라고 하는데 이것은 물렛가락에 감은 실을 다시 가늘게 자른 시누대에 감아서 쓰며 이렇게 감은 실을 꾸리라고 한다.

베를 짜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날이다.

이것을 경(經) 또는 경사(經絲)라고 하는데 여기서 경(經)이라는 한자는 여러 뜻이 있다.

경서(經書) 경, 다스릴(治) 경, 법(法) 경, 경영할(經營)경, 지날(經過) 경, 심지어는 목을 맨다는 뜻도 있어, 옥편에 나와 있는 것만도 아홉 가지나 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용례 중 하나가 지구상의 어떤 위치를 표시할 때 자오선, 즉 날줄을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를 지나는 동경(東經) 127도라는 말은 지구의 적도를 360등분 하여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점으로 동쪽 127번째 자오선(子午線)이라는 뜻이다.

베틀에서도 그러하듯이 날줄은 변할 수 없는 기준선을 의미한다.

 

다스리는 데도 원칙이 있어야 하며, 법에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확고한 규칙이 있다.

길을 가는 데도 정해진 노선이 있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며, 경영을 하는 데도 법도가 있어야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 경(經)의 변함없는 속성이다.

도무지 없어서는 안 되는 인생의 날줄 같은 교훈집이 바로 경전(經典)이요 경서(經書)다.

날줄이 한 개만 끊어지거나 빠지면 베를 아주 버리게 된다.

올이 하나 빠지면 직물(織物)에 아주 큰 흠이 되기 때문이다.

한 오라기라도 날줄 없이 한 필의 베가 될 수 없듯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르고 아름답게 짜기 위해서는 변치 않는 원칙과 기준이 꼭 있어야 한다.

 

그것을 깨달은 성현이나 선지자들이 기록으로 남긴 것이 경전이다.

혹 베틀의 북에서 나오는 씨줄은 끊어져도 어렵지 않게 이을수 있지만 이 날줄이 끊어지는 경우에는 잇는 것이 쉽지 않다.

이미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이기 때문에 끊어진 선이 맞닿아야 잇든지 말든지 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너무 당겨서 끊어진 것을 잇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때는 양쪽의 끊어진 실을 바짝 끌어당기면서 솜을 가지고 잘 감아 주어야 하는데 이때 감는 솜을 풀소금이라고 한다.

그냥 목화솜으로는 안 되고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낼 때 뒤엉키거나 남은 것을 모아서 잉아를 당겼다 놓았다 하는 눈썹대의 눈썹줄에 감아 놓았다가 조금씩 뜯어내어 끊어진 실의 접착제로 사용한다.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동네에서 길쌈을 할 줄 모르면 규모 있는 사람으로 치지도 않았다.

앉으나 서나 길쌈이 삶의 과제요 숙명이었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손길을 거쳐 한 필의 베를 짜고 또 다시 셀 수 없는 수고의 과정을 거쳐 집안 식구들을 추위에서 지키고 예절과 품위를 유지하도록 일생을 바쳐야 했다.

그뿐 아니라 밤을 세워 가면서 그다음 장날에 대어 짜야만 그것으로 양식을 사기도 하고 명절에 쓸 제수(祭需)를사고 아이들의 신발도 살 수가 있었다.

그 베틀에 메어 일생을 살면서 운명 같은 날줄에 인생의 꿈과 시름을 담은 씨줄을 섞어서 삶을 살았고 역사를 이룬 것이다.

 

간디의 물레질

 

인도의 국부(國父)로 일컫는 마하트마 간디는 공무(公務)를마치면 늘 물레 앞에 앉아 실을 잣곤 했다.

 

사람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입지 않고는 나다닐 수 없다는 그 엄숙한 진리를 물레질을 할 때마다 가슴에 거듭 아로새겼을 것이다. 물렛가락에서 실이 쏟아져 나오듯이 끝없는 삶의 이치와 철학이, 용기와 결단이 그리고 조국과 동포에 대한 사랑이 끝없이 이어져 나왔을 것이다.

그의 겸손과 검약은 그 물레질이라는 단순한 노동으로 익히고 다듬은 것이다.

그 물레질이 때로는 기도가 되고 좌선(坐禪)이 되었으며 자기 성찰의 수련(修鍊)이 되었을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나서 뙤약볕과 모진 비바람을 겪으며 피어난 한송이 꽃이 지고 그 열매가 다시 꽃이 되는 원리를 그리고 그 순백의 열매가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따뜻하게 하고 품위 있게 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그 물레를 돌려 실을 뽑으며 생각하고 다짐하고 결심하게 했을 법한 일이다.

 

우리는 이제 물레질을 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어머니들도 이제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목화고치를 말며 물레를 돌려 실을 뽑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 셀 수 없이 많은 손길을 거쳐서 한 필의 피륙으로 짜내는 수고를 감당할 인내심이 사라져 버린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날줄(經絲)의 소중함을 잊고 경전(經典)의 가치를 팽개친 포스트 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일이 끝나고 틈만 생기면 텔레비전에 빠져 헤벌어진 입으로 아무 생각 없이 시시껄렁한 잡담과 별 실속도 없는 호기심과 흥분의 꼬임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물레질을 잊은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텔레비질과 잡담질, 싸이질, 게임질, 문자메시지에 매달리는 엄지질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물레질을 해서 얻은 베틀의 날줄뿐 아니라 삶의 소중한 날줄인 경서로 삶을 짜는 일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용인 민속촌 한쪽 구석에 줄이 삭아 가는 물레처럼 폭삭 늙은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 길쌈으로 고부라진 허리를 펴고 어느 날엔가는 한복 일습(一襲)을 곱게 차려입고 공손한 모습으로 나들이 가시던 어머니의 푸른 눈매가 그리운 저녁이다.

 

<펌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