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엿치기

難勝 2011. 3. 12. 05:13

 

 

 

엿치기

 

보리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 엿장수는 시골 어린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이었다. 동네 입구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꼬마들은 부리나케 움직인다.

엿장수가 오길 기다리며 모아 놓았던 갖가지 고물(古物)을 챙기느라 부산하다. 혹시 빠뜨린 게 없는지, 장독대 주변, 마루밑, 담장밑을 샅샅이 뒤지고 또 뒤진다. 돈을 주고 엿을 사먹는 것이 쉽지 않았던 가난했던 시절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옛적에는 엿판을 어깨에 메고 다녔지만, 1950년대부터는 지게에 얹어 지고 다니다가 1960년대 후반쯤부터는 손수레를 끄는 엿장수로 바뀌었다.

 

엿장수가 마을을 찾는 날은 딱이 정해져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고물(古物)이 적당히 모였다 싶을 때쯤이면 반가운 엿 가위질 소리가 들려온다.

엿장수가 오는 날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달콤한 엿 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아이가 멀쩡한 아버지의 흰고무신을 엿장수에게 몰래 내다주고 엿을 바꿔먹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 밤 아이는 혼이 나지만 그것도 그때뿐, 이미 아이의 뱃속에 들어간 엿을 꺼낼수도 없으니 그것으로 끝이나고 만다.

손자(孫子)·손녀(孫女)들에게 용돈을 줄 형편이 못되는 할머니들은 머리 빗질을 할 때마다 나오는 머리카락을 꼭꼭 모아두었다가 엿장수가 오는 날 손자·손녀들에게 내주곤 했다.

 

엿판 주변에 둘러선 아이들이 “많이 주세요”라고 보채면 엿장수는 “엿장수 마음이야”하면서 엿판 위에 끌을 대고 가위로 쳐 적지 않을 만큼 판때기 엿을 끊어주거나 가래엿을 건네주었다.

 

고물(古物)을 주고 빨래비누나 성냥을 교환(交換)해가는 어른들도 가위질 소리를 듣고 군침을 삼키는 자녀들을 위해 엿 몇 가락도 함께 바꿔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종이, 빈병, 무쇠 솥, 화로(火爐), 쟁기 날(보습), 구리, 비닐부대, 시멘트부대, 고무신, 긴 머리카락, 돼지털, 염소 털 등 재활용(再活用)이 가능한 물건은 모두 엿장수들의 수집대상이었다.

고물(古物)을 수집하는 엿장수는 1980년대를 고비로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시골지역의 생활형편이 고물(古物)을 모아 엿과 비누로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나아진데다 고물 값도 떨어져 수지타산(收支打算)이 맞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엿장수가 사라진 요즘 시골지역에는 빈병, 고철류(古鐵類) 등 갖가지 재활용품(再活用品)이 제대로 수거(收去)되지 않고 산과 들에 방치되어 환경오염(環境汚染)의 한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엿장수를 기다리는 축은 청장년들도 마찬가지였다. 늦겨울 시골집 양지바른 담장 밑에는 옹기종기 동네 사람들이 모여 ‘팔장’을 끼고 한담(閑談)을 나누곤 한다. 그때 멀리서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들려오면 모두들 ‘엿치기’를 서로에게 제의한다.

그리고 ‘엿장수’가 도착하면 ‘엿목판’을 둘러싸고 ‘가래엿’ 한가락씩을 골라 반을 뚝 분질러 훅하고 입김을 분다. 이때 분질러진 엿에 구멍이 큰 사람이 이기게 되고, 구멍이 없거나 적으면 지게 된다.

그래서 엿을 고를 때는 연목판을 볼썽사납게 헝클어 놓기도 한다. 구멍이 크게 뚫렸음직한 엿가락을 고르기 위해서다.

 

‘엿치기’는 두 사람 이상이 하는데, 각각 엿가락 하나씩을 골라 꺾어서 불면 구멍이 입김에 의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것을 서로 가져다 대고 구멍이 큰지, 작은지를 비교하여 제일 큰 사람은 엿을 거저먹고, 구멍이 작은 사람끼리 또 엿을 꺾어서 맨 나중에 구멍이 제일 작은 사람이 엿 값을 몽땅 치르도록 한다.

 

이때의 엿은 어쩌면 그렇게 맛이 있었던지 지금으로서는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만큼 그때는 과자류가 없기도 했지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던 배고픈 시절이라 어떤 음식이든 맛이 없는 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때의 엿은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다. 건너 마을에서 엿목판을 지게에 얹어 짊어지고 논둑길을 걸어 넘어오는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들리면, 그동안 모아 두었던 찢어진 헌 고무신이나 못쓰게 된 양은 냄비, ‘소래이’나 ‘호메이’ 부러진 것등을 들고나가 엿을 바꾸어 온 가족이 조금씩 나누어 먹는데 ‘간에 기별이 가지도 않지만’, 그 맛이 일품이었다.

 

[정의]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엿을 가지고 하는 전통 놀이.

[개설]
이 놀이는 대개 겨울에 하는 것이 보통이며 진 사람이 엿 값을 물고 이긴 사람의 잘라진 엿 토막은 개평이라 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놀이방법]
두 명 이상이 모여서 엿장수가 늘어놓은 엿판의 많은 엿가락 중에서 엿 속의 구명이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고른다. 각자가 고른 엿에서 제일 구멍이 큰 사람이 이기고 작은 사람이 엿 값을 물게 된다. 노는 사람의 정함에 따라 엿 구멍이 작은 사람이 이기는 경우도 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엿치기는 놀이의 성격이 강하지만, 엿을 쳐서 나온 구멍이 크냐 작으냐에 따라 운수를 점치기도 한다. 보통은 구멍이 크면 운수가 좋고 구멍이 작으면 그 반대이다.


 

엿치기
                     오성환

가자, 엿치기 하러가자.

찰랑 찰랑........
엿장사 가위질 소리나면
몽당 숫가락,찌그러진 냄비들고
엿 사 먹어러 간다.
엿치기 하러간다.

지게위에 엿판 올려놓고
찰랑 찰랑.........
신나는 엿장사 가위질 소리,

꼬맹이들 졸졸졸......
엿장사 뒤를 따르고
엿가락 딱 분질러 입으로 후--- 불어
엿치기 한다.

한입 넣고 쫙쫙 신나게 씹던 덤바우는
잇빨 빠지고
놋촛대 훔쳐 엿 사먹던 삭불이는
엄마한테 둘켜
삼십육계 둘판으로 도망가고,

골목골목 돌며
찰랑찰랑 엿장사 가위질 소리
가자, 엿치기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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