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제주 추사 김정희 유배길

難勝 2011. 5. 17. 20:30

▲ 겨우 죽음을 면하고 한양 밖 2000리 제주 대정현에 유배 온 추사

그러나 제주의 돌과 바람은 추사만의 독특한 서체를 완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제주대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 제공 -

 

김정희 걸었던 돌담길 따라 제주 '추사 유배길' 코스 개장

세한도 그렸던 대정현 등 포함

 

붉은 새가 나는 하늘 끝 큰 바다 물가에

한라산은 구불구불 서쪽 가지가 뻗쳐 있고

들 가운데 작은 고을 겨우 말(斗)만 한데

푸른 돌담은 짧은 대울타리와 이어져 있구나

신선들의 약은 돌하르방에 엉켜 있고

송죽의 굳은 절개는 동문 쪽의 사당에서 기리는구나

 

- 추사 김정희의 시 '우연히 짓다' 中 -

 

 

조선시대 대표적 서예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 당쟁에 휘말려 1840년부터 8년간 귀양살이를 했던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의 시구처럼 대정현(縣) 옛 성터 앞의 '말만 한' 마을 어귀 돌담엔 푸른 이끼가 가득하다. 추사가 위리안치(圍籬安置·가시울타리 쳐진 집에서 가택연금)돼 살았던 송계순의 집터에서부터 그가 유배생활 중 아이들을 가르쳤던 대정향교로 이어지는 돌담길, 추사가 맑은 물을 찾아 올랐던 안덕계곡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 탐방객들은 추사의 발자취를 좇는다.

  

조선시대 대표적 귀양지였던 제주도의 유배문화가 관광자원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 연구개발센터는 제주 유배문화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사업의 첫 단계로 추사유배길 코스를 14일 개장한다. '지리산길', '제주올레길' 같이 자연풍광을 소재로 한 걷기 코스가 아닌 역사적 인물과 그의 발자취를 주제로 한 탐방로는 추사유배길이 처음이다.

 

추사유배길에는 추사가 남긴 족적이 그대로 묻어난다. 1코스는 추사 유배지를 기점으로 대정향교를 순환한다. 추사는 이곳에 기거하며 조선시대 문인화의 백미로 꼽히는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남겼고 독창적인 추사체를 확립했다. 2코스는 조선 3대 다인(茶人)으로 꼽혔던 추사가 차를 즐겼던 오설록 녹차밭으로 연결된다. 길 양옆으론 자신이 살던 곳을 귤중옥(橘中獄)이라고 부를 정도로 제주감귤을 좋아했던 추사가 즐겨 거닐던 감귤 과수원길이 펼쳐져 있다. 3코스는 대정향교에서 산방산을 거쳐 추사가 사색을 즐겼던 안덕계곡으로 이어진다.

 

주민들에게 구전되는 추사의 이야기들을 통해서도 유배인과 현지인들 간의 문화적 교류를 엿볼 수 있다.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추사도 한양 2000리 밖 대정현에선 '귀양다리(유배인을 뜻하는 제주 방언)'에 불과했다. 대정읍 주민 김성근(85)씨는 "어른들이 추사를 회고하며 그를 '수염하르방'이라고 불렀다"며 "수염하르방은 마을 사람들의 부탁으로 비문(碑文)이나 병풍 글씨를 써주곤 자신의 호 대신 수염 염(髥)자를 썼다고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지냈던 추사는 자신을 후하게 대접한 대정현 주민들을 위해 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추사유배길을 기획한 제주대 양진건 교수는 "유배인에게 제주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들을 통해 제주는 당대 최고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추사의 세한도뿐 아니라 다산 정약용의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 김만중의 역작 구운몽도 모두 유배지에서 완성됐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추사와 제주 유배문화에 대한 연구서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를 이달 출간할 예정이다.

 

제주대 스토리텔링 연구개발센터는 지역주민들과 연계해 '추사 유배밥상'도 개발하고 상품을 판매해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또 추사유배길에 이어 광해군, 최익현, 이승훈과 관련된 유배 유적지 테마길도 개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