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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대장경 '천년의 비밀'
과학으로 세월을 이기다
그때 그 먹빛·광택, 10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빛난다
송진 엉긴 소나무 태워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
100번 두드려 만든 닥종이… 아직도 처음 빛깔 그대로
장과 장 이어붙이는 풀도 10년 삭힌 후 약재 섞어
"대장경을 조성하는 것은 1000년의 지혜를 모아 1000년의 미래로 보내는 일이다."(고려 승려 대각국사 의천)
올해는 고려 때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1011 ~1087)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00년이 되는 해다. 고려 현종 2년(1011), 거란의 침입을 받은 고려인들은 불력(佛力)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염원을 담아 불경을 한 자 한 자 목판에 새겼다. 흔히 대장경이라면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떠올리지만 이는 초조대장경 목판이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자 다시 만든 재조대장경(1236 ~1251)이다. 초조대장경 목판은 소실됐지만 이를 찍은 인쇄본은 국내에 250권, 일본에 2500여권 남아 있어 고려 기록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1000년 세월을 견딘 초조대장경 인쇄본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비결은 뭘까.
① 100번을 두드려 만든 닥종이
1000년 세월에도, 종이는 변색되지 않고 광택을 유지하고 있다. 닥나무에서 추출한 섬유질을 주재료로 100번 이상 두드려 만들었다. 섬유 사이의 공간이 밀착돼 마치 '코팅'을 한 것 같은 효과가 생겨난 것이다. 고려의 종이는 중국에서도 최고의 종이로 평가받았다. 중국측 문헌에는 "고려의 닥종이는 빛깔이 희고 사랑스럽다" "고려 종이 빛깔은 능라비단같이 희고 질기기는 비단과 같은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여 소중히 여겨진다. 이는 중국에도 없는 귀한 물건"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② 먹의 비밀은 소나무 그을음
종이 위의 글씨는 검은빛이 바래지 않고 여전히 쨍쨍한 흑빛이다.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를 일컫는 '관솔'을 태워서 나오는 그을음을 모으고 이것을 아교와 섞어 만든 '송연묵(松煙墨)'이 그 비밀이다. 이렇게 만든 먹으로 쓴 글씨는 1000년을 넘게 간다.
③ 접착제로는 약재 섞은 풀
장(page)과 장을 이어붙이는 '배접'에는 천연곡물인 밀을 3~10년씩 삭혀 약재를 섞은 풀이 사용됐다. 지금도 사이가 들뜨지 않고 매끄러움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경판은 불에 탔지만 나무가 뒤틀리지 않도록 목재를 가공하는 기술, 고도로 숙련된 각수(刻手·글씨를 새기는 사람)의 솜씨 등 당대의 첨단 과학 기술이 집약돼 있다.
◆누가 비밀 풀었나
이런 비밀을 밝힌 이는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스님)와 경북대 연구팀(남권희 문헌정보학과 교수 등). 지난해 8~11월 '초조대장경 종이 및 장정 분석을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펼쳤다. 현존하는 초조대장경 인쇄본의 종이·축·배접·장정·풀·표지 등의 비밀을 파헤쳤고, 이 분석 결과를 토대로 초조대장경 복원작업에 들어갔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지난 3월 금강경·화엄경·반야바라밀다경 등 1차분 100권을 복간했다.
◆실물로 보려면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은 '1011~2011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 특별전을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18일~8월 31일)과 관악구 신림분관(30일~9월 30일)에서 개최한다. 초조대장경,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사간본(寺刊本·사찰 간행본), 티베트 등 외국의 대장경 등 100여점의 유물이 나온다.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관장 여승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과 세계의 불경전'(5월 31일까지), 강원도 원주 치악산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의 '판화로 보는 불화의 세계' 특별전(7월 15일까지)도 주목할 만하다. 9월 23일부터 11월 6일까지는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