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정 따라 돌고 도는 돈

難勝 2011. 5. 27. 04:51

 

남편이 잠 못 들고 뒤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냅니다.

 

무슨 돈이냐며 묻는 아내에게 남편은 자기의 비상금이었는데…

당신의 핼쑥한 모습이 안쓰럽다며 내일 몰래 혼자 고기뷔페에 가서 소고기 실컷 먹고 오라고 주었습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펴서 쥐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의 눈가엔 물기가…

“여보.. 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어젯밤 남편에게서 만원을 받은 아내는 뷔페에 가지 못했습니다.

못 먹고 산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노인정에 다니시는 시아버지께서 며칠째 맘이 편찮으신 모양입니다.

 

아내는 앞치마에서 그 만원을 꺼내 노인정에 가시는 시아버지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아버님, 만 원이예요. 제대로 용돈 한 번 못 드려서 죄송해요. 작지만 이 돈으로 신세진 친구 분들하고 약주 나누세요.”

 

시아버지는 너무나 며느리가 고마웠습니다.

시아버지는 어려운 살림 힘겹게 끌어 나가는 며느리가 보기 안쓰럽습니다.

시아버지는 그 돈 만원을 쓰지 못하고 노인정에 가서 실컷 자랑만 했습니다.

“여보게들! 울 며느리가 오늘 용돈 빵빵하게 줬다네.”

그리고 그 돈을 장롱 깊숙한 곳에 두었습니다.

 

다음 해 설날.

할아버지는 손녀의 세배를 받습니다.

기우뚱거리며 절을 합니다.

주먹만하던 것이 이제는 훌쩍 자라 내년엔 학교에 간답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오냐’ 하고 절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놓은 그 만원을 손녀에게 세뱃돈으로 줍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외동딸 지연이는 마냥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세뱃돈을 받은 지연이는 부엌에서 손님상을 차리는 엄마를 불러냅니다.

“엄마, 책가방 얼마야?”

 

엄마는 딸의 속을 알겠다는 듯 빙긋 웃습니다.

“왜? 우리 지연이 학교 가고 싶니?”

 

지연이는 엄마에게 할아버지에게서 세뱃돈으로 받은 만원을 엄마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한테 맡길래. 내년에 나 예쁜 책가방 사줘.”

 

요즘 남편이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안하던 잠꼬대까지…

아침에 싸주는 도시락 반찬이 매일 신 김치쪼가리 뿐이라…

 

아내는 조용히 일어나 남편 양복 속주머니에 낮에 딸 지연이가 맡긴 만원을 넣어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