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유국향(蘭有國香)
향기로운 향의 내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나 싶다. 반면 악취에는 너 나 없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마련이다.
향기는 자연적으로 풍겨지는 것도 있고 인위적으로 발라서 나게 하는 것도 있다. 자연의 향기라면 아름답게 피어난 꽃에서 나는 향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꽃의 향기는 그윽하고 풍요롭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본능적으로 그 꽃의 향기를 코로 맡아보게 된다.
사람은 코로 냄새를 맡아 후각작용을 하는가 하면 눈으로는 여러 가지를 관찰하면서 취택을 하게 된다. 그것은 향을 코로 음미하면서 눈으로는 맛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몸을 태워서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향은 희생정신의 교훈적인 향기를 선사한다.
향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 그 예로 향유(香油)가 있으며 그리고 향조(香租)라고 불리우는 궁노루의 향장(香獐)도 있다. 그밖에도 향초(香草)와 향차, 향화, 향목, 향촉 등 그 가지 수는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이러한 향은 제각기 독특함과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싫지 아니하다. 무엇보다 여름날 짙푸른 녹음에 뭍혀 오는 싱그런 풀 향기, 가을날 낙엽이 되어 그 낙엽을 끌어 모아 불태울 때 그 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의 구수한 향기는 일품이다. 자연이 주는 향기도 향기거니와 더불어 인위적인 향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고반여사」(考槃餘事)는 옛사람들의 생활 취미와 즐거움을 적은 책으로 명나라의 도륭이 편찬한 것으로 서적과 그림에 대한 것, 종이․먹․붓․벼루에 대한 것, 거문고에 대한 것, 향과 차에 대한 것, 분재․정자․의복․한약에 대한 것들이 내용이다. 그 중 향에 대하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속세를 떠난 은자가 노자의 '도덕경'을 논하면서 향을 피우면 마음이 맑아지고 정신이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밤 늦은 사경에 달이 기울어 흥도 깨지고 처량할 때에 향을 피우면, 심회가 통하여 시라도 읊조리게 될 것이다. 맑게 갠 날 창가에서 옛날 책자를 베끼거나 먼지를 털어 내고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 혹은 밤에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으면서 향을 피우면 졸음을 몰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근래에 향을 피우는 사람들이 그 진정한 취미를 알지 못하고 여러 가지 향을 합쳐서 기교함을 자랑하니, 이런 인공의 농염한 것이 값은 비싸지만 어찌 정결한 부인이나 덕이 높은 고사(高士)에게 어울릴 수 있겠는가. 마땅히 천연으로 된 침향(沈香)의 유아충담(幽雅沖澹, 아담하고 그윽하며 성질이 결백함) 함을 취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香자는 禾(벼화)자 아래에 日(甘:맛감의 변형)자를 받친 글자로 쌀(禾)로 밥을 지을 때 풍기는 냄새가 입맛(口)를 돋군다는 데서 향기롭다는 뜻이 되었다 한다.
향기의 여운이란 사람은 흥취(興醉)케 한다. 때문에 고급 향기일수록 살아서 움직이며 더불어 감동과 감화를 준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죽었을 때나 제사를 지낼 때 어떤 엄숙한 기도를 올릴 때도 꼭 향을 사르게 된다. 그러고 보면 향은 우리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미래지향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흉사는 흉사대로 길사는 길사대로 병들은 자는 병의 쾌유를 빌 때 또 절에서 불공을 드릴 때도 향은 빠질 수 없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보면 우리 선조들이 향을 사용한 시기는 대단히 오래 전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연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라 눌지왕(訥祗王) 당시 조정에는 큰 경사가 났다. 그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선물을 보내오곤 했는데 큰 나라에서 작은 나라에 선물을 보내왔으니 큰 경사였다. 선물이라고 해야 비단 몇 필과 불그스레한 나무 조각 몇 개였다. 요즘 같으면 보잘 것 없는 것이나 비단천으로 잘 싸서 보내온 그것이 그 때는 말할 수 없이 귀한 선물이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비단이야 옷감으로 쓴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으나 그 나무 조각에 대한 사용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조정에서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중국황제에게 선물을 잘 받았다는 회신을 보내야 하는데 그 나무 조각에 대한 사용처를 모르기 때문에 몹시 고심을 하던 끝에 이 나무 조각의 사용처를 아는 사람에게는 큰 상금을 내리겠다는 방을 전국에 붙이게 하였다. 그 때 묵호자(墨胡子), 일명 아도화상(阿道和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위(魏)나라 사람으로서 굴마의 아들로 태어나 19세 나이로 경북 일선군(一善郡) 현재 선산지방의 모예(毛禮)라는 사람 집에 와서 은신하고 있었는데 이 방을 보고 이제 내가 불음을 전파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모예를 통해서 왕에게 진언케 하였다. 왕은 이 뜻을 전해 듣고 묵호자를 궁실로 불렀다. 왕은 의문의 나무 조각을 그에게 보이고 출처를 물었다. 이것을 본 묵호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향이며 백단향(白丹香)과 자단향(紫丹香)이 있는데, 이 향은 자단향으로 불공을 드릴 때나 혹은 병을 치유하기 위한 때나 그밖에 여러 가지 의식으로 제사 등을 지낼 때에도 이 향을 사루워 사용하면 모든 잡신이 물러가고 무엇이든지 소원을 성취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자 왕은 즉시 묵호자에게 부탁하기를 내 딸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을 앓고 있는데 그 공주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하였다. 묵호자는 왕의 부탁을 받고 향나무를 잘게 쪼개어서 성국공주의 병을 낫게 하는 기도에 사용하면서 독경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불교가 이 땅에 심어지고 안 심어지는 것은 오직 이 순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삶도 죽음도 이 순간에 달려 있음을 알고 부처님께 훌륭한 법력을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그 때 공주의 병은 아도화상의 법력으로 곧 회복되었다. 그 후 왕은 묵호자에게 소원을 묻자 그의 소원은 이 나라에 불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절을 하나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왕은 묵호자의 간곡한 소원인 불음 전파를 요청 받고 경주의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향의 사용처를 알아낸 덕분으로 묵호자의 평생 소원인 이 땅에 불교를 펴는데 공식적으로 왕의 허가를 받아 신라 귀족층에까지 불음을 전파하고 향도 같이 전래되었다고 한다.
사시난향(四時蘭香)이란 말처럼 계절 별로 난을 고루 갖추면 사계절 언제나 은은한 난향과 멋에 취할 수 있다. 봄을 여는 춘란이며, 여름을 쫓는 하란이며, 가을을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게 하는 추란이며, 겨울쯤이야 우습게 여기는 한란 등 대충 이렇게 분류할 수가 있다.
장마 뒤에 올라온 꽃대가 염천과 동지를 견디고 다곳이 피어나 속세를 잊어버릴 것 같은 미향을 사방팔방에 흩는 춘란은 봄을 알리는 전령이다.
건란이나 옥화 등 하란은 아무래도 여름의 염열(炎熱)을 놀려주는 위력의 과시자들이라 하겠다. 제철을 만나 자기를 과시하는 것은 어쩌면 자존심을 건 자연의 오만이자 환희의 함성이다.
바야흐로 여름이다. 여름은 가을의 결실을 전제한 육성의 섭리가 맘껏 퍼부어지고 그것을 누리는 극성과 창무(昌茂)의 계절이다.
따라서 사람도 결실을 염원하며 무수한 비지땀을 흘리며 자신을 연소시킨다. 이러한 삶 속에 애란인들은 잠시나마 하란들의 휘어감을 멋과 향기에 망아(忘我)에 젖어본다.
하지만 우리의 춘란엔 향기가 없건만 애란인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다. 이 세상에도 향기가 없는 우리 춘란처럼 남몰래 향기를 발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향목의 향기며 소심의 향기가 좋다하나 어찌 사람의 향기에 따른 것인가.
이곳 예술랜드의 전시실에서 매일 치우고 제거하는 것이 쓰레기와 잡초다. 하지만 쓰레기와 잡초는 치우고 제거하고 나면 언제 그것들이 그곳에 있었는가 자취도 흔적도 없지만 사람이 남긴 빈자리는 허전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그 사람이 그릇이 큰 사람이라면 그 빈자리는 크게 또 오랫동안 남아 있다.
풍란의 감향이 온실을 가득 채운 날 밤에 사람이 그리워 눈시울을 적신다.
난유국향(蘭有國香)
<이 성 보>
월간 [난과 생활] 칼럼에서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기(陽氣) 가득한 밤꽃 향기 (0) | 2011.06.20 |
---|---|
재미있는 중국의 풍속 (0) | 2011.06.17 |
음양지(陰陽紙)를 아십니까? - 장지방(張紙房) 장용훈 이야기 (0) | 2011.06.13 |
중국인의 명절 (0) | 2011.06.10 |
대나무의 맑음 - 죽지청(竹之淸) (0) | 2011.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