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닫집 - 법당 안에 되살린 불국정토의 궁전

難勝 2011. 7. 13. 20:40

 

 

닫집

 

법당안에 되살린 불국정토의 궁전

 

법당은 단순히 불.보살과 신중들을 모셔 놓고 예불을 올리기 위해 만든 기능적 공간이 아니라 부처님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묘사해 놓은 상징적 공간이다. 대웅전은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상징한 집이고, 극락전은 아미타여래의 서방극락정토를, 약사전은 약사여래의 동방정유리세계를,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미륵전은 미륵불의 도솔정토를 구현한 공간이다. 법당에 들어가는 행위가 부처님의 주처(住處)인 불국정토로 들어가는 의미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법당 안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엄구 중에는 부처님 몸을 장식하는 신장엄구(身莊嚴具)가 있고, 건축물 등 부처님의 몸 이외의 것을 장엄하는 부속 장엄구가 있다. 신장엄구로는 보관(寶冠), 흉식, 영락, 광배 등이 있고, 부속 장엄구로는 수미단, 대좌, 후불탱화, 닫집 등이 있다. 닫집은 그 모양이 집 속에 또 하나의 집을 지어 놓은 것과 같아 그렇게 불린다. 수 백 수 천 나무 조각을 정교히 다듬고 깎아 짜 맞춘 극히 섬세하고 화려한 닫집은 궁전의 전각을 생각나게 하는 데 아무 부족한 것이 없다.

 

닫집은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보개(寶蓋, 또는 天蓋)로서의 상징성이다. 보개는 부처님 머리 위에 설치한 일종의 장엄구로서 그 원형은 일산(日傘)에서 찾아지고, 원류는 인도에 있다. 일산은 열대지방에서 귀인이 외출 할 때에 강한 직사광선을 막기 위해 쓰는 것으로, 부처님이 옥외에서 설법할 때에 일산을 쓴 것에 연유하여 불상에도 보개를 머리 위에 장식하는 풍습이 생겼다, 당초에 일산은 이처럼 생활용품일 뿐이었으나 후에 성인 신분으로서의 위계, 위없는 권위와 존엄 등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닫집이 부처님 머리 위 높은 곳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지위와 권능을 높이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닫집을 법당 안에 설치한 원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불국정토의 궁전 모습을 법당 안에 재현하는 데 있다.

 

 

일곱겹 난간.보물장식 등 화려함의 극치 

각연사 비로전.흥국사 대웅전 닫집 걸작 

부처님 햇빛가리는 ‘일산’서 유래 

 

불국정토를 상징하는 장엄구들은 대부분 은유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닫집은 직유(直喩)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닫집은 불국정토의 궁전 모습을 직접 본 떠 만든 일종의 모형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불경이나 불화에 묘사되어 있는 정토의 모습을 보면, 〈불설아미타경〉에서는, “일곱 겹의 난순(欄楯, 欄干), 일곱 겹의 타아라나무 기둥이 있고, 방울과 금.은.유리.수정의 네 가지 보물로 장식돼 있다. 또한 하늘에서는 음악이 들리고 대지는 황금색을 아름다우며, 주야로 세 번씩 천상의 꽃이 떨어진다”라고 했다.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타아라나무 기둥이 있다고 한 대목이 정토의 궁전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 대목을 닫집 모양과 관련하여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불화에 눈을 돌려 대구 동화사 염불암 아미타극락회상도, 서산 개심사 관경변상(觀經變相) 등 정토변상을 보면, 정토의 궁전 건물들이 기둥과 난간으로 이루어진 정자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토변상에 보이는 둥글고 붉은 기둥과 기와로 이은 팔작지붕의 형태가 닫집의 모양과 유사하다. 부안 개암사 대웅전 닫집이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닫집 지붕 위쪽에 보이는 팔작집의 합각(合閣) 구조는 닫집이 보통 말하는 하늘 덮개(天蓋)가 아니라 궁전과 같은 권위 건축물을 함축, 상징화한 구조물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현존 유적을 기준으로 할 때 닫집은 형태상으로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운궁형(雲宮形)이고, 또 하나는 보궁형(寶宮形)이다. 운궁형은 지붕을 천장 속으로 밀어 넣은 형태로 된 것을 가리키는데, 대표적인 예로서 안동 봉정사 대웅전, 서산 개심사 대웅전의 닫집을 들 수 있다. 천장을 파고 들어간 공간의 사면에 목조 건축에서 중요한 장식 요소인 포작(包作)을 섬세하게 결구 해 놓은 형태이다. 운궁형 닫집은 그 수가 적은 데 비해 보궁형(寶宮形) 닫집은 일반화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보궁형 닫집은 여러 절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 괴산 각연사 비로전, 논산 쌍계사 대웅보전, 여천 흥국사 대웅전, 수원 용주사 대웅전 등의 닫집이 목각 솜씨가 뛰어나고 화려하고 섬세하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각연사 비로전 닫집을 살펴보면, 보통 닫집과 달리 대들보 위에 완성한 닫집을 올려 걸쳐 놓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공포의 짜임은 정밀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용트림하는 용의 모습을 조각한 솜씨와 극락조를 다듬어 낸 수완이 범상치가 않다. 아래로 뻗어 내린 기둥은 일반적인 닫집의 기둥과 비교해 볼 때 짧은 편이다. 비록 짧은 기둥이지만 그 끝에 연꽃 봉오리와 만개한 연꽃을 장식하고, 기둥 상부의 측면과 창방의 하부에 파련각(波蓮刻, 연속되는 당초무늬 등을 새긴 것)장식을 돌려 붙인 낙양을 베풀어 놓은 품이 완벽한 공예작품의 경지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논산 쌍계사 대웅보전의 닫집은 정밀하면서도 품격 높은 닫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미단 위에 봉안된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의 세 부처님 머리 위 천장에 각각 보궁형 닫집이 매달려 있는데, 닫집 처마 밑에 각각 ‘적멸궁(寂滅宮)’, ‘칠보궁(七寶宮)’, ‘만월궁(滿月宮)’이라고 쓴 편액이 붙어 있다. 여기서 적멸궁이란 적멸위락(寂滅爲樂)의 열반에 든 석가모니가 계시는 곳이고, 칠보궁이란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극락정토의 궁전을 의미하며, 만월궁은 약사여래가 주재하는 동방유리광세계의 궁전을 가리킨다.

 

닫집은 중층의 목조건물 형태로 되어 있으며, 전실, 중실, 후실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다. 전실은 1칸, 중실은 3칸, 후실은 5칸으로, 벽 쪽으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다. 이층 처마 밑에 궁전 이름을 쓴 편액이 걸려 있으며, 중실 기둥은 다른 것과 달리 길게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특징을 보인다.

 

흥국사 닫집은 장방형의 본체의 중앙에 작은 닫집을 덧붙인 ‘T’자 형태의 닫집이다. 본체 속에는 오색구름에 싸인 세 마리 용이 정면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고, 그 앞쪽 허공에 서기를 내뿜고 있는 보주가 떠다니고 있다. 덧댄 작은 닫집 안에는 봉황 두 마리가 얼굴을 마주하여 날고 있으며, 그 뒤로 오색찬란한 상서로운 구름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기둥에는 당초문이 새겨진 낙양이 베풀어져 있고, 기둥 아래쪽 끝에는 활짝 핀 연꽃이 장식되어 있다. 지붕은 이중 처마로 되어 있으며, 공포 부분에 앙서와 수서가 뚜렷하고, 도리 양쪽 끝에 모루단청이 올려져 있는 등 완벽한 권위건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용주사 대웅전의 닫집을 보면, 규모는 크지 않으나 짜임이 치밀하고, 황룡의 용트림과 비천의 비상(飛翔) 등 주변 장식물의 표현이 유려하면서도 역동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불국정토에 들어선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닫집과 주변 장식물에 보이는 완벽한 목각 솜씨로 볼 때 당대 최고의 장인이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닫집 주변에 비천을 배치한 예는 완주 송광사 대웅전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나 그리 흔한 편은 아니다.

 

이밖에도 완주 화암사의 극락전, 강화 전등사 대웅전, 부산 범어사 대웅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등에서도 아름답고 조각 솜씨가 돋보이는 닫집을 만나 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무량수전의 닫집은 기둥이 불단에 닿아 있는 드문 예로 꼽힌다. 지금까지 살펴 본 운궁형, 보궁형 닫집 외에 특별히 보개형(寶蓋形) 닫집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이것은 운궁형의 천판에 그려진 용이 돌출하여 조각으로 묘사된 경우를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 보개형은 운궁형과 보궁형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영천 은해사 백흥암의 극락전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조형물에 성스러운 영감을 불어넣기 위하여 동원되는 보편적 방법은 그 위치를 높여 하늘 가까이 하고, 황홀하고 섬세한 장식을 가하는 것이다. 닫집에 다포계(多包系)의 섬세한 포작기술을 총동원하고 용, 봉황, 극락조, 연꽃, 오색구름 등의 화려한 장식을 가한 것은 신성하고 숭고한 천상세계, 다시 말해 불국정토 개념에 실재성을 부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방법이다. 그것을 장식미술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국정토를 장엄하고 환상적인 세계로 표현하려는 조형의지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천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닫집은 성인(聖人)으로서의 부처님이, 뛰어난 지혜를 가진 거룩한 스승으로서의 신비마저 간직한 것을 보여주며, 부처님이 중생들과 다른 숭엄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닫집은 궁궐의 전각 형태로 되어 있음에도, 집이라는 실용성을 초월한 고도의 상징성을 가진 장엄구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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