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범자문(梵字文) - 불.보살을 상징하는 文字佛

難勝 2011. 7. 16. 23:07

 

범어사 옴마니반메훔 소통. ‘卍’과 정법계진언 ‘옴남’이 새겨져 있다.

 

범자문(梵字文)

 

불.보살을 상징하는 ‘文字佛’  

지혜와 자비 성취를 바라는 신앙심의 표현

고려-향완, 조선시대엔 금속공예 전반에 나타나 

가장 많이 보이는 범자는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 

‘옴’은 육자진언의 총체적 의미를 대표하는 글자로 

한 글자속에 법계의 모든 에너지와 聖音 함축돼

   

사찰 장엄은 대부분 인물, 동식물, 자연경관, 기하 문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종종 이런 문양들 사이에 범자(梵字)가 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범자(梵字) 장엄’이라고 한다. 고대 인도문자인 범자(산스크리스 문자)는 문자 자체가 미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장식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범자 장엄의 근본 목적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미화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배우고자 하는 신앙심의 표현에 있다.

   

범자 장엄 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옴’자 한 글자, 또는 ‘옴마니반메훔’의 여섯 글자로 된 진언이다. ‘옴마니반메훔’은 밀교의 대표적 진언으로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줄여서 본심진언(本心眞言) 또는 육자진언이라 부른다. 또는 이 육자진언은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라는 뜻에서 관세음진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묘본심은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을 말하기 때문에, 육자진언은 모든 부처님을 총괄하는 대일여래(비로자나불)의 진언으로서 신앙되어 왔다.

 

그리고 ‘옴’은 육자진언의 총체적 의미를 대표하는 글자로서 이 한 글자 속에 법계의 모든 에너지와 성음(聖音)이 함축되어 있다. 육자진언 외에도 범자 장엄으로 자주 활용되는 것은 ‘옴남’과 같은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옴 가라지야 사바하’와 같은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 등이 있다.

 

진언은 그 진리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하나 굳이 해석을 가한다면, ‘옴마니반메훔’의 옴(Om)은 곧 ‘Aum’으로, 태초 이전부터 울려오는 우주의 본원적 소리, 즉 성음(聖音)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니(mani)는 여의주(如意珠)로서, 이것은 어떤 대상이든 상대의 근기에 상응하여 청정한 본원 자성을 드러내어 깨달음을 성취케 한다는 의미를 가진 상징 언어이다. 그리고 반메(padme)는 연꽃이라는 뜻으로, 연꽃이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듯이 깨달으면 비록 중생 가운데 있으나 청정한 본원 자성을 나타냄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훔(Hum)은 우주 소리(Om)를 통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밀교에서는 인계(印契 : 밀교에서 불.보살의 깨달은 진리.서원 등의 덕을 손가락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내 보이는 모양)를 결하고 부처님의 상을 떠올리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육자진언을 염송하면 온갖 보배로써 무수한 불.보살을 조성하고 공양하는 공덕 보다 더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고, 한량없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심을 얻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밀교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범자 장엄인데, 현존 유물을 중심으로 보면, 고려시대 향완에 가장 많이 나타나며, 조선시대의 경우는 범종, 향완, 운판 등 금속 공예 전반에 흔히 나타난다. 조선시대에 범자 진언 장엄이 성행했던 이유는 진언을 염송하면 일시에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고, 모든 어려움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기복신앙이 유행했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범자 장엄은 금속 공예품 중에서도 특히 범종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범종에 가장 많이 보이는 범자는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이다. 육자진언 장엄의 유례를 남양주 봉선사종(보물 제397호), 공주 갑사동종(보물 제478호)을 비롯하여, 고성 옥천사동종, 파주 보광사 숭정칠년명동종, 통영 안정사동종, 유점사동종(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서울 백련사동종, 사천 다솔사동종 등 수많은 많은 조선종에서 볼 수 있다.

 

먼저 봉선사종을 살펴보면, 이 종은 1469년에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봉선사를 창건하면서 선왕(세조)의 축복을 위해 주조한 종이다. 조선 초기 왕실 발원으로 제작한 종 가운데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종으로 알려져 있다. 유곽(乳廓) 아래 오른쪽에서부터 ‘옴마니반메훔’ 여섯 글자가, 유곽 위쪽 좌우에 각각 ‘옴’자 한 자씩을 새겨 놓았다. ‘옴’자는 한 글자로 된 진언이지만 이 한 글자로써 무주 법계의 모든 성음(聖音)을 나타내기 때문에 육자진언 전부를 새긴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그리고 갑사동종은 조선 초기의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선조 17년(1584)에 만든 종이다. 종 어깨에 꽃무늬를 물결 모양으로 둘렀고, 바로 밑에는 위 아래로 나누어 위에는 연꽃무늬를, 아래에는 원안에 든 범자를 촘촘히 새겼는데, 그 중에서 다섯 종의 범자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원 안에 범자를 쓰는 방식은 조선시대 범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으로, 청암사동종, 수타사동종 등에서도 같은 작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보광사동종은 종의 배 부분에 보살입상을 중심으로 육자대명왕진언과 파지옥진언을 배치하였다. 육자진언은 보살상의 오른쪽에 세 글자, 왼쪽에 두 글자를 새겼다. 오른 쪽 중앙에 ‘옴’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중심에서부터 진언이 시작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육자대명진언’이라고 쓴 설명문과 달리 육자진언 여섯 글자가 모두 써있는 것 같지 않다. 파지옥진언의 경우는 보살상 왼쪽에는 글자가 없고, 오른 쪽에만 세 글자가 새겨놓았는데, ‘옴가라지야 사바하’ 중에서 ‘옴’자와 ‘가’자가 확인된다.

 

이밖에 안정사종의 당좌는 이중의 원과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심원 안에는 ‘卍’자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작은 6개의 원이 둘러져 있으며, 이 작은 원안에 ‘옴마니반메훔’을 한자씩 적고 바깥의 원은 연주문(連珠紋)을 둘러 마무리했다. 그리고 옥천사동종에도 육자진언이 범자로 양각되어 있는데, 그 중 ‘메’에 해당하는 글자가 한자의 ‘공(孔)’자와 똑같은 모양으로 표기되어 있어 흥미롭다.

 

한편, 향완 중에서는 표충사청동함은향완(국보 제75호)의 범자 장엄이 높은 세련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명종 때 제작된 이 향완은 은입사(銀入絲) 기법을 사용한 청동제 공예품으로 넓은 전의 윗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6개의 원 안에 ‘홈마니반메훔’의 범자를 은입사 했고, 그 사이사이에 구름무늬를 장식했다. 이밖에 범자 장엄이 볼만 한 향완은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420호), 통도사은입사동제향로(보물 제334호) 등이 있다.

 

범종이나 향완 등 금속 공예품에 범자 진언을 시문한 것은 장식 목적보다는 진언의 효험을 기대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것은 신앙의 표시로, 또는 모든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몸에 범자를 문신(文身)하는 행위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전 천장의 범자 진언은 연꽃과 함께 시문되어 높은 장식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안동 봉정사 대웅전과 서산 개심사 대웅전 우물천장의 범자 장식이다. 이들 사찰의 천장 장식은 여섯 개 꽃잎을 돌아가며 육자진언을, 중방에 육자진언 중 한 글자를 쓴 것을 단위 문양으로 삼았다. 이 단위 문양을 천장에 사방연속으로 배치했는데, 여섯 개의 연꽃이 모여 육자진언이 완성되도록 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천장을 장식한 예를 강화 전등사 대웅전 천장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연꽃 중방에 범자 대신에 ‘卍’자를 일률적으로 써놓은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유물을 소개하면, 현재 범어사에 소장되어 있는 이것은 옴마니반메훔 소통(疎筒)이라고 부르는 나무로 만든 통이다. 의식에 사용한 발원문이나 소문(疎文)을 안에 넣어 불단 옆에 보관해 두는 의식구(儀式具)의 일종인데, 난간 모양의 받침대, 네모난 통 모양의 몸체, 보개형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초문을 바탕무늬로 한 몸체에 만개한 모란꽃.연꽃.동백꽃을 투각하고 꽃 속에 진언을 써넣었다. 앞면에는 ‘옴마니반메훔’ 여섯 글자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또렷이 새기고, 뒷면에는 만(卍)자와 정법계진언인 ‘옴남’ 두 글자를 새겼다. 화려하면서도 순정적인 채색과, 정교하면서도 정감이 깃든 조각 솜씨에서 조선시대 장인의 성정을 느낄 수 있다.

 

이밖에 이례적인 예로서 수원 용주사에 ‘옴’자가 음각된 돌확이 있다. 이것은 범자가 불구나 불전 장엄이 아닌 평범한 정원 경물(景物) 장식에 활용된 사례이고, 울주 청송사지부도 탑신의 밑 부분에 범어(梵語) ‘옴마니반메훔’ 여섯 글자가 돌아가며 새겨져 있는 것은 석조물에 진언이 새겨진 드문 예에 속한다. 그리고 경기 광주 망월사 대웅전 앞 담장의 기와에 새겨진 ‘옴’자는 현대인의 소작이지만 범자의 기와장식문양으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이다.

 

불교의 참다운 진리는 시각이나 청각으로 깨달을 수도 없고 다른 어떤 방법으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징을 통하여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진언이 바로 상징 언어이고, 범자는 그 상징 언어의 시각적 표징이다. 그래서 범자는 결국 존형(尊形)이나 갖가지 지물이나 인계(印契) 등의 삼매야형으로 불.보살을 표현하는 대신에 문자로써 불.보살을 나타낸 ‘문자불(文字佛)’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