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팔만대장경 보존의 비밀

難勝 2011. 9. 18. 21:05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경남 합천 해인사 내 수다라전

 

 

대장경축전 760여년 대장경 보존의 비밀

 

 

경판 소금물에 삶고 마구리ㆍ장석 끼워 변형 최소화

판전 설계가 핵심..흙 바닥ㆍ크기 다른 살창으로 대류현상 이용

일본 반출ㆍ戰亂 승려들이 막아..10여 차례 화재에도 ’멀쩡’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중인 고려대장경은 완성된지 760여년이 지났지만 8만1천258장이나 되는 경판 가운데 부식된 것은 하나도 없다.

 

장구한 세월 고려인들의 호국정신을 간직해온 대장경 보존의 비밀은 현대 과학으로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대장경천년축전 조직위와 해인사,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이 비밀은 경판 준비과정, 판전건물의 특수설계, 숱한 전란(戰亂)과 화마(火魔)를 피해간 ’기적’ 등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소금물에 판자 삶고 마구리ㆍ장석까지

 

대장경을 새길 경판 재료로 어떤 나무를 선택하느냐부터가 ’과학’이다. 

현재까지 연구결과 수종은 산벚나무가 가장 많고 돌배나무, 거제수나무 등 3종이 80%를 넘는다. 

자작나무로 만들었다는 설은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 어디서나 자라는 산벚나무는 잘 썩지 않고 나무 질이 좋은 심재(心材) 부분이 많고 조직이 치밀해 경판재로는 최고다.

 

최근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연구한 학자들이 당시 고려인들의 탁월한 선택에 놀랄 뿐이다. 

고려인들은 판자 상태로 가공된 나무를 우선 소금물로 삶아 말리는 과정을 거쳤다. 

벌레 먹고 썩는 것을 방비하는 것도 있지만 건조과정의 갈라짐, 틀어짐, 굽음 등 변형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문헌은 이렇게 할 경우 조각하기도 쉬워진다고 전하고 있다.

 

경판 나무를 바닷물에 3년간 담가뒀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지만 정설은 아니다. 

다음엔 배수가 잘 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사방이 툭 틘 약간 높은 곳에 지어진 넓은 건물 안에서 1년 정도 정성껏 말려야 한다. 

가장자리에 있는 판자가 빨리 마르므로 며칠에 한 번씩 판자 위치를 바꾸는 것은 상식.

 

요즘 두껍고 건조가 어려운 귀한 나무는 횡단면에 방수 페인트를 바르듯 당시엔 판자의 양끝에 두껍게 풀칠을 하고 한지를 붙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수종을 잘 선택해 삶고 잘 말렸지만 고려의 장인들은 뒤틀림이나 굽음을 방지하기 위해 경판 양쪽에 나무로 마구리를 끼워 넣었다. 그러고도 안심을 못한 장인들은 다시 마구리와 경판을 금속 장석으로 연결했다.

 

글씨 한 자를 새길 때마다 한 번씩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빌었다니 전 과정에 걸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노하우의 핵심..판전 건물에 숨은 비밀

 

대장경 보존의 노하우는 나무 자체에도 있지만 핵심은 역시 판전에 숨어 있다.

 

해인사 본당에 해당하는 대적광전 뒤로 올라가면 서남향으로 수다라장(修多羅藏)과 법보전(法寶殿)이 길게 마주 보고 있다.  

각 30칸 195평 일자(一字)형 목조건물로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곳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두 건물 사이 동서 양쪽 끝에는 자그마한 건물이 한 채씩 있다. 고려각판이라는 또다른 경판을 보관 중인 동ㆍ서 사간전(寺刊殿)이다. 

판전 내부는 경판 보관 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복잡하지 않고 소박하고 단순하게 만들었다.  

이 단순함이야말로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건축기술로 평가된다.

 

바닥은 나무가 아닌 흙으로 돼 있고 경판꽂이(板袈)를 판전의 길이 방향으로 설치하고 적당한 공간을 둬 상하좌우의 공기 흐름을 원활하도록 고안했다.

 

건물 바깥벽에 설치한 붙박이 살창도 판전 안의 공기 흐름을 배려한 설계다.

 

벽면 아래와 위,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살창 크기를 달리해 대류현상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판전 뒤쪽을 통해 판전으로 들어간 공기는 경판의 수분을 빼앗아 무거워지면 아래로 처진다.

 

이 공기가 빨리 빠져나가도록 앞면 아래 창은 크게 만들었고 위로 올라간 건조한 공기는 천천히 나가도록 위창은 아래창의 4분의 1 크기로 만든 것이다.

 

바닥에는 모래, 횟가루, 찰흙을 깔고 그 위에 숯을 깐 다음 소금을 깐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숯은 습도를 조절하고 벌레가 경판을 갉아먹지 않도록 넣은 것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임학자인 박상진 전 경북대 교수는 해인사의 허락을 받아 판전 바닥을 직접 파본 결과 구운 숯을 두텁게 깔아놓은 것은 아니라 드문드문 발견되는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굳이 숯을 넣지 않아도 바닥 흙이 계절에 따라 판전 내부 습도를 조절해주는 자연순환식 설계를 했다는 것이다.

 

판전 내부 판가는 굵은 각재를 이용해 견고하게 설치한 후 경판을 두 단씩 세워 놓도록 해 공기 유통이 잘 되도록 했다.

 

여기다 경판에 붙은 마구리 덕분에 경판과 경판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보면 길죽한 직사각형 공간이 있다. 이 틈새가 일종의 굴뚝 효과를 내 경판 표면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전란과 화재를 모두 피해 간 ’기적’

 

대장경 보전의 일등공신은 역시 해인사 승려들이다.  

조선조 ’억불숭유’ 정책의 핍박 속에서 묵묵히 견디며 일본 반출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냈다.

 

전란과 화재 위험은 온몸으로 막아냈다.

 

일본은 남해안 지역을 위협하며 불교를 억압하던 조선조정을 ’협박 반, 설득 반’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 대장경을 반출하려고 했지만 다행히 성공하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지만 승병과 의병들의 힘으로 해인사에 접근하려는 왜구를 막아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은 대장경을 노렸지만 스님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한국전쟁 와중에는 해인사를 거점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던 인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해인사 폭격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당시 김영환 대령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를 거부, 잿더미로 만들 뻔한 위기에서 대장경을 구했다.

 

이 밖에도 해인사에는 10여 차례 화재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판전은 불길을 피했다.

 

대장경의 비밀을 연구해온 박상진 박사는 “해인사 대적광전도 여러 차례 불탔지만 판전만은 멀쩡했다”며 “단순히 기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신비하고 경이로울 따름”이라고 그의 저서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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