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주.
왼쪽부터 제주의 한라산, 대구·경북의 참소주, 전북의 하이트, 광주·전남의 잎새주, 대전·충남의 린, 부산의 C1
서울서 맛보는 고향 소주
지방소주 찾는 서울 주당
서울 소주보다 비싸도 동창회·향우회서 인기
시장점유율 올라가고, 지방소주 마니아층도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백모(32)씨는 매년 고교 동창 모임을 홍익대입구 'H주점'에서 갖는다. 동창 대부분이 광화문·여의도 근처에서 근무하는데도 굳이 이곳에서 동창회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부산의 지역 소주인 C1(시원)소주를 팔기 때문. 백씨는 "평소에는 참이슬·처음처럼 등 '서울술'을 마시지만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예전에 함께 마셨던 '부산술'을 찾는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술 소주에도 지역차가 있다. 1973년 정부는 소주의 과당경쟁과 품질저하를 막기 위해 '1도(道)1사(社)정책'을 실시했다. 이 정책은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아 폐지됐지만, 지역의 대표 소주로 자리매김한 자도(自道) 소주들은 여전히 지역에서 60∼80%대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부산의 C1(대선), 경남의 화이트와 좋은데이(무학), 광주·전남의 잎새주(보해), 대구·경북의 참소주(금복주), 전북의 하이트(보배), 대전·충남의 린(선양), 충북의 시원(충북소주), 그리고 제주의 한라산(한라산소주)이 대표적인 자도소주다.
참이슬(진로)과 처음처럼(롯데)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 시장에서 이들 지방소주를 판매하는 주점은 10여곳. 종로에서 전국 소주를 모두 판매하는 'S주점'에는 지방소주를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주점 관계자는 "C1소주에 부산 냉채족발, 잎새주에 홍어삼합 안주를 곁들이는 식으로 고향의 기분을 느끼려는 손님이 많아 전체 매출의 30% 이상이 지방 소주로 나간다"고 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단연 부산의 C1소주와 제주의 한라산. 자도소주의 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는 이 지역 출신 손님들이 다른 지역 출신 손님보다 자도소주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것. 부산출신 회사원 강모(26)씨는 "고교 졸업하고 처음 마셨던 술의 맛을 잊기 어려운 탓도 있고, 고향 친구들과 동질감도 느낄 수 있어 일부러 찾는다"고 했다. 제주출신 대학생 김모(28)씨도 "고향에선 늘 한라산만 마셔서 고향 친구들과 있으면 자도소주가 생각난다"고 했다.
손님의 요청으로 지방소주를 들여놓은 주점도 있다. 서울 신촌의 H민속주점에선 한라산 소주를 판매한다. 신순옥 점주는 "6년 전 제주도 출신 단골손님이 와 '향우회를 하려는데 제주도 소주를 구해달라'고 해 그 이후로 계속 제주도 소주를 들여놓고 있다"고 했다. 이후 신씨의 주점은 제주도 출신 손님들의 주요 모임장소가 됐다.
지방소주를 판매하는 주점들은 소주 자체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순례지'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 김선형(29)씨는 "단맛의 정도 등 지역별 소주 맛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며 "늘 마시는 서울소주 대신 다양한 소주를 마실 수 있고, 호기심도 충족할 수 있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서울에 유통망을 갖추고 있지 못하는 지방 소주들은 보통 3000원 선인 서울 소주에 비해 1000원 정도 비싸다. 하지만 지방소주를 찾는 손님들에게 비싼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홍대앞 H주점 백연기 점주는 "대부분 지방 출신인 손님들에겐 다소 비싼 가격이라도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고, 고향 친구들과의 모임을 가지기에도 좋아 선호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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