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홍천 공작산 생태숲길
가을 끝자락에 안겨 바스락, 낙엽 카펫을 걷다
흔히 단풍놀이를 가을철 나들이의 백미(白眉)로 꼽지만 깊어가는 가을 정취에 빠지려면 낙엽으로 뒤덮인 숲길을 걷는 게 으뜸이다. 앙상한 나무 사이로 쓸쓸히 져버린 낙엽 위로 발걸음을 내디디면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주위를 맴돈다.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저물어가는 한 해를 돌이켜보는 기회도 갖게 된다.
강원도 홍천의 공작산(孔雀山) 생태숲길(약 5.8㎞)은 늦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낙엽 산행에 적합한 코스다. 163만㎡ 부지에 상수리나무·졸참나무·은행나무 등에서 떨어진 낙엽이 카펫처럼 천지에 펼쳐져 있다. 천년고찰 수타사(壽陀寺)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공작산 생태숲길 걷기는 수타사 주차장 부근에서 시작한다.
산길이지만 험하지 않아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길 왼편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오른쪽에 숲이 우거져 있다. 공작교까지 가는 길 중간에는 100년 된 소나무 위에 20년 된 뽕나무가 동거하는 별난 모습을 볼 수 있다. 언뜻 봐서는 잘 알기 어렵지만 친절한 안내 표지판이 있으니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찾을 수 있다.
공작교를 건너면 수타사 입구인 봉황문에 닿는다.
봉황문 안에는 험상궂은 얼굴로 수타사를 지키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볼 수 있다. 신라 성덕왕 7년인 708년 일월사(日月寺)라는 이름으로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후 수차례 변란으로 불타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조선 세조 3년 1457년에 이 자리에 지금 이름으로 세워졌다. 중심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내부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작지만 아름다운 절이다.
수타사를 지나 연못을 지나면 오른편에 '숲속길'이라 쓰인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600m 남짓한 짧은 길이지만 우거진 숲속으로 난 길이 단정하게 뻗어 있다. '숲속길' 아래쪽에 조성돼 있는 역사문화 생태숲은 엄밀히 말해 숲이라기보다 공원에 가까운 느낌이다. 과거 스님들이 농작물을 기르던 곳에 각종 나무를 심어놓았다.
생태공원이 끝나는 곳에선 '산소길'이라 쓰인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물길을 따라 걷는 왕복 2㎞가 넘는 계곡 길이다. 나무들은 낙엽이 거의 떨어져 앙상한 모습이지만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이 레드카펫처럼 깔려 있어 걷기에 좋다.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까지 매달려 있는 잎새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지막에 떨어지는 단풍은 봄철에 가장 먼저 돋아난 잎이다. 낙엽은 성장호르몬 분비가 끝나는 순서대로 떨어져 성장호르몬이 풍부한 나무 꼭대기 잎이 마지막까지 남는다고 한다.
수타계곡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깊고 푸른 물이 가득 고여 있는 '귕소'가 나타난다.
'귕'은 여물통을 뜻하는 이곳 말로, 계곡에 물이 고여 있는 모양이 나무통을 길게 파서 만든 소 여물통과 비슷하다고 해서 '귕소'라고 부른다. 귕소에는 물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중굴이 있는데, 사람이 한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한다.
귕소를 지나자 계곡 사이에 나무로 만든 다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건너갈 수 있지만 조금 더 가면 징검다리도 나온다. 나무다리로 건너면 삐걱삐걱 흔들리는 맛이 있고, 징검다리로 건너면 옛 노래나 소설에 등장한 것 같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면 징검다리로 건너갈 수 없다.
◇공작새가 날개 펼친 듯한 산세
다리를 건너면 오던 길 반대편을 따라서 내려가는 길이다. 비슷한 길로 걷는 게 지루하면 계곡 중간 자갈밭에 내려가서 놀다가도 좋다. 계곡에서 고개를 들어 산줄기를 좌우로 살피면 능선이 너울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른 바위와 물이 어우러진 수타계곡의 장관과 이를 감싸고 있는 능선은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산세(山勢)가 공작새가 날개를 펼친 듯 아름다워서 ‘공작산’이란 이름이 붙었다는데, 수긍이 간다.
명품 물길을 따라 30분 가까이 걷다 보면 ‘수타사 0.2㎞, 약수봉 2.1㎞’라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회전한 뒤 10m 정도 위에 놓인 이정표에서 ‘교육체험 등산로’라고 적힌 화살표를 따라가자. 공작산 생태숲길의 마지막 코스로 해발 350m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경사로다.
‘교육체험 등산로’ 주위에는 나이 든 소나무들이 빽빽하다.
아름드리 소나무의 늠름한 기상이 뿜어져 나온다.
30여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고 나면 내리막길이다.
이길 중간에 수타사가 내려다보이는 명당이 있다. 일종의 ‘포토 스팟(사진 찍기 좋은 장소)’이다. 나무 데크로 되어 있어 잠시 숨돌리고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수타사는 물론 공작교나 공원 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산을 내려오면 다리를 건너 다시 처음에 출발했던 주차장으로 향한다. 사하촌(寺下村) 식당가의 강원도 별미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곳 음식점의 주특기는 강원도 토속음식. 막국수를 비롯, 각종 나물과 도토리묵, 더덕구이 등이 먹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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