拈華茶室

[스님의 에세이] 봄 계곡물도 평평한 곳에선 소리 내지 않더라

難勝 2012. 3. 17. 04:19

봄 계곡물도 평평한 곳에선 소리 내지 않더라

 

8년만에 돌아온 山寺 생활

얼음 녹고 나무엔 생기 돌며 곧바로 봄이 왔음을 깨달아

쓸데없다고 버리지도 않지만 필요하다고 구하지도 않아

세상과의 거리가 주는 구원감

 

 

 

원철 스님·법주사 강사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을 지나면서 호시절을 맞춘 봄비가 이틀 동안 길게 내렸다. 빙판 아래 숨죽여 겨우 흐르던 물소리가 골짜기마다 졸졸졸 제법 커졌고 새들의 날갯짓도 한층 가벼워졌다. 이미 며칠 전부터 돌수곽의 가장자리가 꽤 녹아 있었고 두께마저도 얇아졌다. 미리 봄을 당겨보겠다는 성급한 마음에 커다란 직사각형 얼음장을 양손으로 쥐었다. 힘을 잔뜩 주고 들어 올렸는데, 물에서 벗어나자마자 뚝 소리를 내며 가운데가 끊어졌다. 이내 떨어지면서 바스라져 조각조각 갈라졌다. 한 개씩 끄집어내어 햇살 퍼진 마당으로 내던지면서 새삼 '봄이구나' 하고 혼잣소리로 말했다. 얼음을 쥐어도 손이 시리지 않았던 까닭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5리(里) 숲길 산책로의 평평한 너래반석 위에 잠시 고여 있는 물은 잠잠했다. 얼마 전에 열반하신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께서 세간에 유행시킨 '수평불류(水平不流)'라는 말을 떠올렸다. 물도 평평한 곳을 흐를 때는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다. 사람 역시 공평함 앞에선 뒷말이 없기 마련이다. 이를 '인평불어(人平不語)'라고 하셨다. 길 양편 산 언저리에 여기저기 듬성듬성 서 있는 조릿대는 아침이슬처럼 둥근 빗방울을 잎새 위에 달고 있었고 군더더기 없이 모든 걸 털어버리고 겨우내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던 나목들도 생기가 돌면서 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산사(山寺)에는 봄이 오는 것이 하루하루 순간순간 달라진 만큼 눈에 바로 비친다. 달력을 보고서 숫자를 통해 봄이 온 것을 아는 도시인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강산이 변할 만한 8년간의 수도승(首都僧·'서울에 사는 승려'라는 뜻) 생활을 마친 뒤 지난해 말 다시 찾아온 산이다. 분주함 뒤의 한가함인지라 그래서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둥근 그릇이건 사각 그릇이건 담기는 대로 모양을 바꾸며 살아가는 물처럼 도심의 승려 생활도 금방 적응이 되었었다. 다시 시작한 산승(山僧)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비교를 통해 그 차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젊은 시절 산에 머물 때는 제대로 보이지 않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제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또 그 풍광이 제대로 음미되기 시작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세상사를 보고 듣지 않으면 번뇌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속리산(俗離山)'은 그 이름만으로도 좋았다. 비록 발바닥은 땅을 딛고 서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세속을 떠난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은둔객을 자처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머물고 있는 곳을 물어도 내 입으로 대답하지 않는 것과 모르는 휴대전화 번호는 전화를 받지 않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상과의 인위적 단절에서 오는 여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조계종 종단에서 일하던 수도승 시절엔 분기별로 두 통씩 찍었던 명함도 산승이 되니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얼굴이 명함인 신분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제 알 만한 이들은 알음알음으로 내 거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오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보니 거리가 주는 구원감 덕분에 혼자라서 더 즐거운 독락(獨樂)의 시간들이다.

 

속리산은 명산인지라 비경(秘境)과 역사가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혼자서 잘 놀 수 있는 소일거리다. 산 중턱에는 한글 창제에 큰 역할을 했다는 신미(信眉)대사와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전을 현재 규모로 증축했다는 학조(學祖)대사의 부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참배하면서 가끔 부도 주변의 낙엽을 빗자루로 쓸어내기도 했다. 문장대(文藏臺)는 예로부터 시인과 묵객(墨客)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았고, 문(文)·사(史)·철(哲)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문필봉(文筆峰) 대접을 받고 있는 명소이다. 오래전부터 과거나 고시·학위 등 큰 시험을 앞둔 이들이 합격을 기원하며 기도 삼아 다녀갔다. 나는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몸뚱아리의 건강을 위해 이번 겨우내 자주 오르내렸다. 오가는 길에 눈 덮인 산장에서 마음씨 좋은 주인 거사에게 얻어먹는 일품의 당귀차 맛도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제 봄을 맞은 산사(山寺)도 선방(禪房)과 강원(講院)이 모두 해제(解制·방학)때 인지라 경내마저 텅 비었다. 이래저래 더 일없는 한가한 도인(道人)이 된 것이다.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발자국에도 한적함이 묻어난다. 올해 탄신 100주년을 맞는 성철 스님께서 처음 접했을 때 엄청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중국 당나라 때 현각 스님의 '증도가(證道歌)' 첫 구절이 더없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

 

더 배울 것도 없고 더 해야 할 일도 없는 한가한 사람은

 

쓸데없다고 버리지도 않지만 필요하다고 구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