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불교 용어집(72) - 영산재, 영산회상거염화......

難勝 2008. 5. 18. 04:37

영가(永嘉) :

스님 법명은 玄覺(현각), 자는 明道(명도), 호는 眞覺(진각)이다. 8살에 출가하여 장경을 널리보고 天台(천태)의 止觀(지관)을 숭상했고 그 묘를 얻고 항상 禪觀(선관)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유마경」을 읽다가 견성, 조계에 가서 六組에게 인가를 받고는 곧 돌아가서 고향의 龍興寺(용흥사)에 있었다. 그의 저서로는「禪宗永嘉集(선종영가집), 觀心十門(관심십문), 證道歌(증도가)」등이 남아있다.

당나라 玄宗 開元(현종 개원) 1년에 49세로써 앉아서 入寂(입적)하였다.

 ☞ 영가(永嘉)스님은 천태종에 있으면서 선관을 닦고 선종과 비슷한 길을 밟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다고 합니다.


영명(永明) : (904 ~ 975)

法眼宗(법안종)의 제 3祖이며, 淨土宗(정토종)에서도 그를 제 6祖로 섬긴다. 법명은 延壽(연수). 속성은 王(왕)씨. 절강성 향주부 餘杭縣(여항현)에서 낳다. 스물여덟에 출가 천태산에 가서 德昭(덕소)국사의 법을 받았고, 智者禪院(지자선원)에서 법화경을 많이 독송했다.

항주 慧日山(혜일산) 永明寺에서는 날마다 일과로 백 여덟 가지를 정해놓고 실행하였는데 그중 염불이 십만번씩이었다. 그때의 모인 대중이 항상 수천명이 되었다. 고려의 光宗(광종)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다.

고려의 스님이 그의 문하에 가서 印可(인가) 받은 이가 圓空國師(원공국사) 이외의 설흔 여섯 사람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에서는 한때 法眼宗(법안종)이 성하게 된 것이다.

그의 저서로는「宗鏡錄(종경록)」100권,「萬善同歸集(만선동귀집)」6권,「唯心訣(유심결)」1권, 그 밖에도 많은 저서가 있었다. 송나라 開寶(개보) 8년에 72세로 입적, 시호를 智覺禪師(지각선사)라고 한다.


영산(靈山) :

靈山은 범어(梵語)의 音을 따 기사굴산(耆사堀山)이라 하고 뜻으로 靈鷲山(영취산), 鷲峰 靈山(취봉 영산)이라 번역한다. 이 山은 中印度(중인도) 마갈타의 서울 王舍城(왕사성) 동북쪽 10리 지점에 있다.


영산재 :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취산(靈鷲山)에 계시며 설법하시던 때의 모임으로, 이 법회에 동참한 모든 청문중(聽聞衆), 외호중(外護衆)이 환희심을 일으키고 시방의 제석천왕과 수많은 보살, 신중 등이 운집하여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환희했으며,

하늘에는 만다라 꽃이 날리고 묘음보살(妙音菩薩) 및 천동천녀(天童天女)가 내려와 꽃과 향, 기악과 가무로써 공양하였던 당시의 광경을 상징화한 의식절차를 영산재라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어느날 부처님이 靈山(영산)에서 설법을 하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한 자리에 모인 수 많은 대중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 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