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금강경(金剛經) 강의(7) - 5. 如理實見分

難勝 2008. 6. 18. 05:58

                          금강경(金剛經) 강의(7)


5. 如理實見分

須菩提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 不也世尊 不可以身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佛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해석:진리에 대한 통찰(여리실견분) - 실제의 마음을 보라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가히 육신의 형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의 형상만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육신의 형상은 곧 육신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형상 있는 것은(凡所有相) 모두 허망하느니라.(皆是虛妄) 모든 형상이 실체가 없다고 보면(若見諸相非相) 곧 여래를 보느니라(卽見如來)


강설(講說):如理實見分의 如理는 "理와 같이" “理대로”라는 뜻입니다. 理라고 하는 것은 “事”와 대비되어 나타납니다. 事는 인연의 사실들입니다. “理”는 그 인연의 사실들을 일으키고 있는 연기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理”는 진여(眞如)의 세계며 그것은 생멸(生滅)을 일으키는 자체의 세계입니다.

실견(實見)은 여실히 본다의 뜻으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입니다. 금강경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소위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할 때 그때 인생을 무엇으로 기준으로 할 것인가? 네가 아무리 불교를 믿고 사십구년 동안 부처님 모시고 법문을 들어 봤자, 아무 필요 없는 헛일이 된다는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 분절(分節)입니다. 이른바 우리는 불성(佛性)자리가 있다고 하지만 불성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불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불교를 피상적(皮相的)으로만 보고 “현실을 무시하고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이 몸뚱이보다 한 발 더 앞에 있는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곧 마음입니다. 몸은 마음 뒤에 따라다니는 그림자입니다. 마음이 앉아야 몸이 앉고, 마음이 먼저 드러누어야 몸이 따라 드러누우니 어떤 것이 현실입니까. 항상 앞에 있는 이것이 현실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마음이 현실이고 주체입니다. 이 마음이 만사(萬事)의 주체입니다. 남에게 욕을 하거나 때리거나 마음이 먼저 시작하면 몸뚱이는 따라 하는 것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네가 지금 나한테 묻는 그것(마음)이 무엇이냐?” 수보리 존자는 그 뜻을 알고 있지만 미래 중생들을 위해서 일부러 물으시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너는 누구인가?. 여래가 무엇인가?” 하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도리를 밝힌 것이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인데 이치대로 진리 그대로를 실답게 보는 절이란 뜻입니다. 이 절에서 금강경의 진리를 대표하는 사구게(四句偈)인 「범소유상개시허망(凡所有相皆是虛妄)」이 나온다. 이 뜻을 잘 해득하면 금강경을 다 알게 됩니다.


본문: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 得見如來

해석(解釋):"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가히 육신의 형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의 형상만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강설(講說):제 4품 집착함이 없는 실천(妙行無住分)에서 아무 조건 없이, 어디에고 이끌림 없이 남을 위한다는 생각 없이(應無所住) 남을 도와주고 보시를 행하면(行於布施) 큰 보람으로 전지전능(全知全能)한 능력을 내어 큰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에 머무름 없이 부주상으로 보시(不住相布施)하면 그 복덕이 한량없이 많아서 생각으로는 헤아려 볼 수 없는 무한한 복덕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여기서는 부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라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공부하는 것은 사실 부처를 보기 위함이 아니냐?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신상(身相)으로 부처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은 거룩한 삼십이상(三十二相)이 있고, 보기 좋은 팔십종호(八十種好)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무량겁을 지내 오면서 보살만행(菩薩萬行)을 닦으실 적에 오직 중생만을 위하여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베풀어주었고,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가진 돈이 없으면 노동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서 약도 사 주고 먹을 것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누가 당신 팔이나 눈을 약으로 쓰겠다고 하면 조금도 주저 없이 팔도 짤라 주고 눈을 빼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선행(善行)을 하면 아주 복된 삶을 살게 되는데 사람에게 없는 이런 상호(相好)는 물론 범부에게는 없는 상이고 부처님에게 특별히 있는 상이고 공덕으로 나타난 상입니다. 예를 들면 향기로운 꽃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면 내생에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하며, 옷이나 모자로 공양하면 내생에서 옷을 걱정하지 않고 신체도 건강하다고 합니다. 많은 의약품을 보시하면 내생에는 병에 걸리지 않고, 전생에 만약 의약을 보시하는데 인색했다면 이 생애에서는 평생동안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인과응보입니다. 부처님이 32상 80종의 좋은 모습을 갖춘 것은 과보입니다. 여기서 부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유형한 형상으로 부처를 보는 것이 가능하냐고? 이것이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제시한 문제입니다. 수보리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합니다. 형상으로 부처님을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절에서 우상을 숭배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그려놓은 부처나 새겨놓은 보살상에 절을 할까? 그것은 부처님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공경심을 끌어내기 위함입니다. 절을 하는 것은 그림이나 형상에 하는 것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나무토막을 보고 절을 했든 흙덩어리를 보고 절을 했든 오직 일념으로 성심성의를 다했다면 성공을 한 것이고 가피력을 받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말했습니다. 그것은 “나로 인해 그대들이 공경스럽게 되는 것(人我禮汝)”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디일까? 자신의 마음, 즉 자신의 성(誠)과 경(敬)입니다. 그런데 <능엄경>에 부처님이 아난에게 왜 출가를 했느냐고 물으니, 아난은 “부처님의 모습이 하도 훌륭해서 그 모습에 반해서 출가를 했습니다”고 말하니 부처님은 아난이 상에 사로잡혀 훌륭한 모습만 보고 출가했다고 나무랍니다. 이런 까닭에 부처는 신상(身相)으로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의 상호를 32상 80종호라고 말합니다. 또 32상을 32大丈夫相, 32大人相, 32大士相으로 불리는데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나열된 32상(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족하평안입상(足下平安立相)-편평족과 마당발의 형태. 석굴암 본존 발바닥모양이 그러하다.

2.족하이륜상(足下二輪相)-발바닥에 두 개의 수레바퀴 자국 같은 것이 있다. 석굴암 본존불에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3.장지상(長指相) 발가락․손가락이 가늘면서 길다.

4.족근광평상(足跟廣平相)-발뒤꿈치가 넓고 평평하다.

5.수족지만망상(手足指縵網相)- 손가락․발가락 사이에 무늬없이 비단같은 그물, 즉 황금빛 물갈퀴가 있다(오리발처럼).

6.수족유연상(手足柔軟相)- 손․발이 매우 보드라워 도라면(兜羅綿)같고 紅赤색을 띤다.

7.족부고만상(足趺高滿相)- 발등이 거북이 등 모양으로 높고 통통하다.

8.이니정박상(伊泥延膊相)- 장딴지가 이니연이라는 사슴의 다리같이 가늘고 둥글며 예쁘게 점점 굵어진다.

9.정립수마슬상(正立手摩膝相)- 일어서서 팔을 내리면 무릎까지 내려간다.

10.음장상(陰藏相)- 자지가 馬王의 자지처럼 산봉우리같이 크고 우뚝 솟으나 보통 때는 오므라들어 몸 속에서 안보일 정도로 숨어있다.

11.신광장등상(身廣長等相)- 키가 두 팔 벌린 넓이와 같다.

12.모상향상(毛上向相)-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털이 위로 솟아있고 紺靑색이며 부드럽고 윤기가 있다.

13.일일공일모생상(一一孔一毛生相)- 털구멍 하나에 반드시 한 개의 털만 나며, 그 색깔은 청유리색이며, 모든 털구멍에서 미묘한 향기가 난다.

14.금색상(金色相)- 온 몸전체가 순금빛이며 광채가 나고 깨끗하다.

15.장광상(丈光相)- 온 몸에서 발하는 빛이 한 길이 된다.

16.세박피상(細薄皮相)- 살결이 보드랍고 매끄러우면 일체의 더러움이 물들지 않는다.

17.칠처융만상(七處隆滿相)- 두 발바닥․두 손바닥 두 어깨․목덜미 일곱군데가 도톰하고 원만청결하며 빛이 나며 유연하다.

18.양액하융만상(兩腋下隆滿相)- 두 겨드랑이 밑이 不高不深, 도톰하여 허당이 없다.

19.상신여사자상(上身如師子相)- 윗몸의 위용이 端嚴한 것이 꼭 사자 같다.

20.대직신상(大直身相)- 사람 중에서 그 신체가 가장 곧고 크다.

21.견원호상(肩圓好相)- 양 어깨가 둥글며 풍만한 느낌을 주며 특별히 잘 생겼다.

22.사십치상(四十齒相)- 잇빨의 개수가 40개이며 가지런하고 백설같이 희다.

23.치제상(齒齊相)- 잇빨생김이 높거나 낫거나 둘쑥날쑥하지 않고 가지런하여 털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다.

24.아백상(牙白相)- 잇빨이 백설같이 희고 광채가 난다. 혹설에는, 40개이외로 아래위 두 개씩 네 잇빨이 희고 광결(光潔)하다.

25.사자협상(獅子頰相)- 두 뺨이 넓고 도톰한 것이 동물의 왕인 사자의 뺨같다.

26.미중득상미상(味中得上味相)- 목구멍 양쪽에서 감로가 흘러나와 무엇이든지 입안에 들어가면 최고로 맛있게 된다.

27.대설상(大舌相)- 혓바닥이 길고 넓고 연박(軟薄)하여 입안에서 나오면 얼굴전체를 덮을 수 있다.(선사 馬祖를 연상)

28.범성상(凡聲相)-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것과 같이 맑고 멀리 퍼지는데 꼭 가릉빈가(迦陵頻伽) 새소리 같다. 듣는 자에게 기쁨을 준다.

29.진청안상(眞靑眼相)- 눈동자가 검푸르며(紺靑色), 푸른 연꽃과도 같다.

30.우안첩상(牛眼睫相) 속눈썹이 길고 가지런하고 얽히지 않은 모습의 소의 것 과 같다.

31.정계상(頂髻相)- 머리꼭대기 한가운데 살이 솟아올라 꼭 상투모양을 하고 있다.(물론 석굴암본존상의 머리꼭대기에도 육계(肉髻)가 표현되어 있다).

32.백모상(白毛相)- 두 눈썹사이로(眉間) 흰털이 나서 도라면(兜羅綿)과도 같다. 그 모습이 백설과도 같이 희며 광결청정(光潔淸淨)하다.

그리고 이외에 부처님의 색신(色身)의 특징을 묘사하는 말로써 팔십종호(八十種好)라는 것이 있는데 그 걸음걸이가 코끼리처럼 유유자적하다든지, 귓밥이 륜상(輪狀)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든지 하는 80종의 특징을 가르킵니다.


본문:何以故 如來所設身相 卽非身相

해석(解釋):"왜 그러냐 하면(何以故)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뚱이의 모양(如來 所設身相)은 곧 몸뚱이의 모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뚱이의 모양이 여래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卽非身相)."


강설(講說):왜냐하면 진정으로 불생불멸하는 몸은 이런 육신이 아니다. 육신은 생사가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설사 천년을 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역시 죽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장(寶掌)이라는 선사는 천년을 살았는데 인도에서 오백년을 살았으나 도를 깨닫지 못하자 중국에 대승불법이 전래 할 것을 알고 건너와 달마대사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많은 절을 지어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의 육신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천년을 살다가 죽었는데 불생불멸하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법신입니다. 법신은 형상이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육체와 정신 두 가지가 있는데 어느 것이 참 나인가, 이 육체는 언젠가는 늙어 죽을 것이며 그것은 하나의 물질에 불과합니다. 근육이나 뼈가 우리 몸뚱이의 주가 되는데 이것을 분석해 보면 결국 수분․당분․지방질 등의 물질적 요소에 불과합니다. 혈액이나 오줌 등을 보더라도 결국 이것은 물질이며 오장육부는 물론 뇌세포까지라도 그것은 물질적 구조에 불과하며 물질은 결국 생명일 수는 없습니다. 이 몸뚱이는 마음이 없으면 송장입니다. 육체를 부려먹는 게 마음입니다. 마음은 운전수고 육체는 택시와 한 가지입니다. 마음이 몸뚱이더러 앉으라, 서라, 가자, 온갖 일을 다 시킵니다. 그런데 몸뚱이는 죽어 없어지는 것이므로 마음이 곧 나입니다. 이 마음은 물질도 허공도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산 것입니다. 이것이 확실히 믿어지면 그 날 저녁부터 잠도 잘 오고 영원히 죽음을 면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니 큰 환희를 얻습니다. 곧 이 몸뚱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몸뚱이가 아닌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또 하셨습니다.


본문:佛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해석(解釋):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양으로 있는 모든 것, 모든 현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이 모든 현상이 상이 아닌 줄을 직관(直觀)할 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즉 마음을 깨친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강설(講說):이 금강경 계통을 전부 통틀어 반야부(般若部)라고 하고 그 부수(部數)만도 육백부나 되고 경책의 권수로는 이천권이나 됩니다. 그 가운데 반야심경(般若心經) 같이 작은 경도 있지만 큰 경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육백부의 골수를 통틀어 얘기하는 대표적인 글이 다음에 나오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란 네 구절입니다. 이 사구게 열여섯 글자 안에 금강경의 핵심은 물론 반야 육백부 전체의 내용을 표현했다는 뜻에서 반야제일게(般若第一偈)라고도 합니다.

“무릇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라는 말은 어떤 경계에 있는 것은 모두 가짜라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 수행하지 않으면 없어집니다. 좌선을 통해 어떤 경계에 이르렀다면 좌선하지 않으면 그 경계는 없어집니다. 경계란 바로 상으로서, 모든 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진정한 부처를 볼 수 있을까요. 법신을 볼 때 비로소 진정한 부처를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若見諸相非相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에서 상(相)이 상(相)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 흔히 이 부분을 공(空)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생각이지 부처님이 말한 것은 아닙니다. 구마라습도 공(空)이라고 번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도 단지 상(相)이라고만 말 할 뿐 결코 공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치는 바로 머무는 바가 없는(無所住)데 있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의 제 5품 如理實見分의 핵심은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즉 “모양으로 있는 모든 것, 모든 현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이 모든 현상이 상이 아닌 줄을 직관(直觀)할 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의 네 구절입니다. 금강경(金剛經)에서 언급한 사구게(四句偈)는 도대체 어떤 구절일까요?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제10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 응당 형태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소리와 냄새, 맛과 느낌,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응주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제26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만약 형체로써 나를 보거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소리로써 나를 구합니다면

시인생사도(是人行邪道):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자로서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제 32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일체의 유위법은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하느니라.


금강경에 사구절만 읽어 가지고 성불한 사람도 있고 반야바라밀만 읽어 가지고 신통(神通)이 나오기도 하고「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만 외워서 견성(見性)히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가지만 해야 합니다. 참선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다라니를 하든지 하나에 전념을 해야지 이것저것 다하면 그것은 허욕이 되고 정신이 한 가지로 통일되기 어렵습니다. 가령 “옴마니반메훔”만 자꾸 염송(念頌)하다 보면 나중에는 소리도 아니고 “옴메”만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깨닫는 시간이 빨라집니다. 현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그런 줄 확실히 알았으면 마음이 드러난다는 금강경 사구게 곧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 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 諸相非相 卽見如來)」를 마음을 다해 읽었다면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안 드러나는 것이니 이것을 천독만독(千讀萬讀)해서도 안 된다면 내생에 또 독송할 각오로 자꾸 읽어야 합니다.

불교에서 삼신설(三身說)이 있습니다.

법신(法身)-진리의 신체를 의미하며 영원불멸의 진리의 당체를 가르킨다. 법불(法佛), 법신불(法身佛), 자성불(自性佛), 여여불(如如佛)등으로 불립니다.

응신(應身)-온갖 중생들의 구제를 위하여, 세간의 사람들의 부름에 향응(響應)하여 나타나는 신체라는 의미로서 응신(應身), 응신불(應身佛), 응화신(應化身)등으로 불립니다.

보신(報身)-우리 인간이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으로서 행업(行業)을 쌓아 그 행업(行業)의 보(報)로서 완전히 공덕을 구비한 불신(佛身)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체(體), 상(相), 용(用)을 불법에 비교해서 말을 많이 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체(體)-물이 곧 체(體)이고 술이든 차든 아이스크림이든 물의 본질적인 성질이 법신이자 체입니다.

상(相)-물로 끓인 차가 상(相)이고, 술을 빚었다면 이 술이 곧 상입니다.

용(用)-각기 다른 다양한 변화현상이 모두 이 용입니다.

깨달음을 성취한 것을 선종에서 대철대오(大徹大悟)라 했는데 금강경(金剛經)에서 이를 ‘아뇩다라삼먁보리’ 즉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 합니다. 여기서 오(悟)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일까? 그것은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말하는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것입니다. 금강경 머리글에 ‘어떻게 하면 장수할 수 있고 금강불괴의 몸을 이룰 수 있습니까?(云何得長壽, 金剛不壞身)?라는 구절은 법신을 말합니다. 일념이 일어나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나는 것 역시 법신을 가르킵니다. 법신은 상이 없습니다.

보신(報身)은 원만하다는 것은 수행의 방면에서 말합니다. 무릇 도를 얻는 사람이라면 부모로부터 받은 색신(色身), 즉 육신이 바뀝니다. 일체 중생의 모든 육체는 보신입니다. 일생을 아주 편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은 그의 선한 업보로 인해 얻은 보신 때문입니다. 괴로운 이는 과거생에 그가 심은 씨앗의 결과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 사대의 색신을 바꾸자면 계(戒)․정(定)․혜(慧)뿐 아니라 온갖 수행의 방법이 모두 필요합니다. 이렇게 색신이 완전히 바뀐 다음에야 비로소 즉신성취(卽身成就)가 원만함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상(身相)에 집착을 많이 합니다. 과도하게 상에 집착하는 사람을 의학에서는 종교심리적 질환으로 보는데, 마땅히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불교뿐 아니라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과도하게 상에 집착하고 맹목적인 신앙을 견지하면 나중에 정신병으로까지 발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이나 공부를 하면서 상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모든 상은 허망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리를 틀고 앉으면 도가 나타나고 다리를 틀지 않으면 그 경계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도를 얻은 것이 아니라 다리 트는 것을 얻은 것입니다. “중용(中庸)”에서 “도란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 앞에 부처가 나타났다면 반드시 안과로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분명 눈에 이상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나 정진중에 어떤 소리나 혹은 특이한 영감을 얻거나 하면 보통 사람들은 여기에 탐닉합니다. 그러나 이것 모두 허망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상의 보리는 지극히 평범한 것입니다. 도란 일상 생활속에 있다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제일 고명한 사람입니다. 노자는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 같다(大智若愚).” 지혜가 극에 이르면 대단히 평범해집니다.

제일 평범한 곳에 도달해서야만 비로소 최고의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농담으로 인류의 문화는 두 개의 사과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와 또 하나는 뉴턴의 사과입니다. 이로 인해 세계문명이 다시 한번 변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를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대로 맛있는 사과를 먹으면서 만유인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습니다. 사과는 지극히 평범하지 해마다 땅에 떨어지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이 평범한 사실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물을 끊이거나 밥을 할 때 생기는 수증기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지만, 제임스 와트는 여기서 증기기관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일체의 사물은 가장 평범한 것 속에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