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경만 이본(異本)이 많을까
구약성서는 수천년간 집성…오랜 세월 原本 없다보니 무수한 필사본들만 존재
佛經은 부처 사후 공식 결집
코란도 수정될 여지없이 전승
4세기에 만들어진 그리스어 성서 사본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의 새로운 부분이 이집트의 한 수도원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는 '시나이 성서사본(聖書寫本)'이라는 뜻이다. 이 사본의 다른 부분은 오래전에 같은 곳에서 나왔다. 1844년 독일학자 티셴도르프가 시나이산 성(聖)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처음 찾아냈고 1975년 이곳에서 원고가 또 나왔다.
이 원고는 4세기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필사됐다. 지금은 성서 정경(正經)의 바탕 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까지 나온 문서들은 온라인(www.codex-sinaiticus.net )에서 볼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부분은 구약 '여호수아서'의 1장10절이다.
성서 사본 발견 중 대표적인 것이 1947년 사해(死海) 주변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이다. '쿰란 사본'이라고도 불리는 약 900편의 문헌들은 기원전 250년에서 서기 68년 사이에 작성됐다.
1945년에는 이집트 중부지역에서 파피루스 묶음이 나온 적이 있다. '나지함마디 문서'로 알려진 이 묶음에는 '도마복음' 등 위경(僞經)으로 분류되는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왜 불경(佛經)이나 코란 같은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달리 기독교의 성서는 지금도 계속 고대의 사본과 이본(異本)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경전의 성립 기간이 대단히 길었다는 점을 꼽는다. 구약성서의 원본은 기원전 1400년~430년까지 1000년 동안에 걸쳐 선지자(先知者)들에 의해 전승·기록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의 활동기부터 '요한계시록'이 완성된 서기 1세기 말까지 약 100년 동안이다. 여기에 신·구약의 중간기까지 합하면 1500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의 구약성서가 다 들어 있는 1008년의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사본'이 나온 것은 이보다 900년이 더 지나서였다.
문제는 성서의 '원본'이 현재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종류의 필사본들만 존재하게 됐다. 필사본은 필사 과정에서의 착오 때문에 조금씩 달라졌다. 필사자의 의도에 따라 고쳐지는 경우도 있었다.
한 예로 '마가복음' 13장 32절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는 예수의 말에서 당혹감을 느낀 일부 필사자들은 '아들도 모르고'라는 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다.
신약성서의 경우 헬라어 사본만 5000여개에 이르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문서가 거의 없다. 여기에 수많은 외경(外經)과 위경까지 더해져 더 복잡해진다. 기독교 성립 초기에는 이 자료들이 정경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았다.
유윤종 평택대 신학부 교수는 "현재의 성서는 가장 원의(原義)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본들을 근거로 확립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해 사본을 비롯한 많은 발굴과 연구를 통해 이제는 성서 본문의 전승이 매우 신빙성이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다른 종교는 어땠을까? 불경(佛經)의 경우에는 이설(異說)의 등장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던 경전 성립 과정이 주목된다. 김선근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는 "부처 사후 불경을 확립하기 위해 네 차례의 회의가 열렸다"고 말했다.
기원전 5세기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 칠엽굴(七葉窟)에서 가섭존자(迦葉尊者)의 주재로 제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합송(合誦)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확인했는데 이것이 '제1결집'이었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노라(如是我聞)'라는 말로 시작되는 불경의 형식은 여기에서 유래됐다. 100년 뒤에 제2결집이 이뤄졌다.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 때 1000명의 승려가 모인 제3결집에서는 경전이 처음으로 문자화됐다.
이때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이 결집됐다고 전해지는데 결국 '문자화'와 '공식화'가 동시에 진행됐던 것이다. 서기 2세기 쿠샨왕조 카니슈카왕 때의 제4결집은 주석(註釋)을 결집했다.
이슬람교의 코란은 창시자인 무함마드(570~632)에게 전해진 알라(신·神)의 계시 내용을 7세기 중반에 집대성해 114장으로 편집한 것이다. 이것이 곧 정본(正本)으로 인정돼 이후 수정 없이 전승됐다.
기독교에 비하면 경전이 성립된 시간이 매우 짧았고 이본이 등장할 가능성이 사라진 상황이었던 것이다.
옛 성서 사본이 계속 발견되는 이유에는 환경적 요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이스라엘이나 이집트 지역의 '지중해성 기후'다. 지중해고고학 전문가인 김성일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중해 연안인 그 지역들은 한낮에 그늘 안팎의 온도 차이가 10도가 넘을 정도로 건조하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이런 기후에선 옛 자료를 훼손하는 세균들이 좀처럼 서식할 수 없기 때문에 고대의 문헌 유물들이 잘 보존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리스에선 기원전 4~5세기의 양피지나 파피루스가 아직도 발굴돼 나올 정도니, 시나이 사본 일부가 새삼 출현하는 정도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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