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10월 상달의 의미, 풍습과 음식

難勝 2010. 9. 30. 20:47

 

 

10월 상달


옛부터 10월을 '상달' 이라 불렀습니다.

'上달'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달, 복된 달, 으뜸 달 이라는 뜻으로 일 년 농사를 모두 거두어 들여 곳간(庫間)마다 오곡백과가 가득하니 먹지 아니하여도 배부르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때입니다.


또한 이 시기는 수확한 신곡신과(新穀新果)를 가지고 하늘과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상달기도는 원래 우리나라 전통의 세시풍속이며 민간신앙이었습니다.


상달고사

1. 상달고사의 의미

상달고사란 음력 10월에 집안의 안녕을 위하여 가신(家神)들에게 올리는 의례를 말한다. 고사라는 말은 세시풍속상에서 안택(安宅)이라는 말과 혼동되어서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러한 점은 양자가 가정단위의 제사이며, 아울러 성주·조상·터주·조왕·삼신 등 모시는 대상신들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사는 주로 상달고사를 말하며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강하고, 안택은 주로 정월에 행해지며 연초의 액막이 및 행운 기원의 의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사 혹은 안택이라는 이름은 중부를 포함한 중부이북지방에 분포되어 있고, 영호남 지방에서는 도신(禱神) 또는 도신제라 부른다.

최남선은《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고시레·고사·굿'을 같은 어원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그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의례를 '고시레'라 하고, '고사'는 굿의 규모는 아닌 중간 정도의 의례를 말하며, 장구를 울리고 무악(巫樂)을 갖추어 춤을 추는 등 규모가 가장 큰 의례를 '굿'이라고 하였다.

2. 상달고사의 유래

상달고사의 유래에 대해서는 상세히 전하는 바가 없으며 다만 옛기록을 통하여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최남선은《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상달은 10월을 말하며, 이 시기는 일년내 농사가 마무리되고 신곡신과(新穀新果)를 수확하여 하늘과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기간 이다.

따라서 10월은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게 되는 달로서 열두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로 생각하여 상달이라 하였다." 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달에는 예로부터 무수한 종교적 행사가 전승되어 왔다.

고대에는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등 추수감사의 의미를 내포하는 제천의식이 있었다. 고려 때에는 팔관회(八關會)가 그 맥을 이은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고사 혹은 안택으로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볼 때 상달고사의 유래는 고대 국가행사인 제천의식에서 가정의례로 변모하여 전승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상달의 풍습

10월에는 입동, 소설의 절기가 있는 계절로 겨울 날씨에 접어들었으나 아직 햇볕이 따뜻하여 소춘(小春)이라고도 한다. 10월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민가에서는 가장 높은 달이라 했다.

1.성주제

이 달의 무오일(戊午日)인 말 날에는 상마일(上馬日)로 쳐서 말을 위해 마굿간 앞에 시루 팥떡을 놓고 고사를 지내고 길일을 택해서 신곡을 가지고 떡을 찧고 술을 빚어서 터줏대감굿을 하는데 이것을 성주제라 한다.

2. 농공제

5대조 이상의 조상께 시제(時祭)를 올리고 단군에게 신곡을 드리는 제사인 농공제를 지낸다.


상달의 음식

10월의 시식으로는 시루떡, 무 시루떡, 만두국, 열구자탕, 변씨 만두, 연포탕, 애탕, 애단자, 밀단고, 강정 등이 있으며 김장을 담근다. 10월 상달의 고사떡은 추수 감사의 뜻이 담긴 절식이고 대추, 감, 밤도 저장하여 두면 겨울을 알리는 첫서리가 내리더라도 농사하는 백성들은 겨울 채비를 마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된다.


추수를 끝낸 뒤 햅쌀로 떡을 해먹고 제도 지낸다.


메시루떡

멥쌀가루를 시루에 켜켜로 안쳐서 찌는 것인데 쌀가루에 무엇을 섞었는지, 고물은 무엇을 얹었는가에 따라 떡의 명칭이 달라진다. 떡을 찔 때 주의할 것은, 시루에 가루를 안쳐 김이 새지 않도록 시루번을 잘 돌려 붙이고 처음엔 뚜껑을 덮지 말고 불을 지펴서 얼마 뒤에 떡에서 김이 오르는 것이 보이면 이때 짚으로 짠 뚜껑 (짚방석)을 덮어야 물이 차지 않는다. 근래에는 간편한 방법으로 찜통에 찌는데 이때는 젖은 보를 깔거나 창호지를 오려 밑에 깔고 가루를 안친다. 멥쌀가루로만 하면 메떡이고, 찹쌀가루로만 하면 찰떡인데 멥쌀과 찹쌀을 합하여 반찰떡을 하면 잘 부서지지도 않고, 빨리 굳지 않아서 좋다. 예전엔 반찰떡을 무당떡 이라고도 했다.


붉은팥 시루떡

멥쌀을 불려 가루로 하여 소금 간을 하고 설탕을 적당히 넣어 단맛을 낸다. 팥고물은 통팥을 무르게 삶아 찧어 소금으로 간한다. 시루에 팥고물 한 켜, 쌀가루 한 켜 이렇게 되풀이하여 안쳐서 쪄 낸다. 붉은팥은 잡귀를 물리치는 색이라 하여 고사 때 쓰고 경사 때는 거피 팥을 쪄서 흰 고물로 하여 쓴다.


물호박떡

청등호박(늙은 호박)을 고지로 말리지 않고, 납죽납죽 썰어서 설탕에 재웠다가 쌀가루와 함께 버무려 시루에 안쳐 쪄낸다. 뜸을 잘 들여 쏟아 내면 따끈한 것이 꿀을 넣은 듯 달콤하고 부드럽다. 한 그릇에 담아 수저로 떠먹으면 제격이다. 여름철에는 상추, 초파일에는 느티를 섞어 찐다.


무 시루떡과 호박 고지 시루떡

무 시루떡은 찰가루에 무채를 섞어서 찐 것이다. 호박 고지 시루떡은 단호박 말린 고지를 불렸다가 찰가루와 섞어서, 거피 팥고물을 얹어 시루에 켜켜로 안쳐 진 것이다.


김장

해마다 음력 10월이면 겨울철 먹을 김치를 한꺼번에 담근다. 김치는 채소를 저장하여 먹을 것이라 소금에 절였고, 또한 미각의 발달이 보다 맛난 것을 찾음으로 해서 자연적으로 여러 종류의 김치가 생기고 맛이 날로 달라져 가고 있다. 김장의 시기는 입동 전후에 담아, 겨울 추위가 오기 전 알맞게 익어질 무렵에 추위가 닥쳐야 제맛이 나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김치는 현대인의 식생활을 균형 있게 하는데 제격이다. 알카리성 식품인 채소 요리이고, 비타민C가 충분하고, 젖산 발효에 의해 특별한 맛과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생선, 젓갈 등을 넣어 단백질을 보충해 주고, 마늘의 항암 작용이 있어 더욱 권할 만한 우리의 대표적 음식이다. 다만 현대인의 건강을 위하여 너무 짜게나 너무 맵게 먹는 것은 해로우니 짜지 않게 담도록 한다. 김장 때 담는 김치로는 통배추 김치, 깍두기, 동치미, 섞박지, 보쌈 김치가 대표적이다. 김치의 시작은 한사군 시대에 소금 절임부터 시작되어 지금과 같이 고춧가루를 넣은 김치는 17세기 고추가 들어온 뒤이다. 「음식 디미방」(1670년경 한글 요리서)에 7종류, 「산림경제」(1715년경)에 8종류, 「증보산림경제」(1776년)에 )4종의 김치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음식디미방」에 있는 김치 담는 법은 간장이나 기름에 볶아 천초, 후추로 양념했거나 소금에 절였던 것이 전부였다. 「산림경제」에는 고추가 등장하여 김치 담는 법이 다양해진 것을 볼 수 있다. 김치의 종류는 재료와 담그는 방법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여 김치, 장아찌, 절임, 깍두기, 동치미, 짠지, 식해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그 종류가 약 60여 종류가 되고, 김치 담그는데 사용되는 재료는 100여 종에 이른다. 주재료는 무, 배추, 오이, 기타 채소와 부재료로 소금, 과일, 파, 마늘, 고추, 생강, 생선, 젓갈류 등이 이용된다. 지방마다 기후가 달라 김치 담그는 법과 재료가 달라 향토식의 김치가 매우 특색 있게 발달되었다. 서울의 통김치, 개성의 보쌈 김치, 공주의 깍두기, 평안도의 동치미가 유명하다.


난로회(煖爐會)와 신선로(열구자탕)

예전에는 숯불을 화로의 가운데에 지펴 놓고, 번철을 올려 쇠고기에 기름,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 등으로 조미하여 둘러 앉아 먹었는데 이를 난로회라 하여 날씨가 차지니 이때부터 먹는 음식으로 추위를 막는 시절 음식이다. 또 쇠고기, 돼지고기, 무, 오이, 훈채, 계란을 섞어 장탕을 끓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신선로이다.


변씨 만두(卞氏饅頭)

메밀가루로 만두 껍질을 만들고 채소,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꿩고기, 두부, 파와 양념을 합하여 소를 만들어 세모나게 빚어서 장국에 익혀 먹는다. 메밀가루 대신 밀가루로도 하는데 만두 이름을 변씨 만두라고 한 것은 변씨 성을 가진 이가 처음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명 칭이다.


연포탕(軟泡湯)

전통법으로는 두부를 가늘게 절어 꼬치에 꿰어 기름에 부친 것을 닭고기국에 넣어 끓인 것이다. 포는 두부를 뜻하는데 회남왕(淮南王)때 시작되었다 한다. 지금은 조리법이 많이 변하여 두부 전골로하여 먹는다.


유과(油菓)

유과는 예부터 내려오는 과자 가운데 으뜸이다. 유과는 산자, 강정, 빙사과 등으로 그 모양과 고물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경사 때, 제사 때 꼭 차리는 음식으로 입에 넣으면 바삭하게 부서지면서 사르르 녹는데 유과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유과를 담는 그릇은 옛날엔 버들동구리에 넣어 보관하여 두고 먹었다. 찹쌀 4컵을 깨끗이 씻어 1주일 정도 골마지지게 담가두었다가 깨끗이 씻어, 곱게 가루로 만든다. 콩물 삼분의 일 컵, 설탕 3큰술, 소주 2큰술을 물에 합하여 넣어, 약간 부수수하게 반죽을 만든다. 찜통에 고루 익도록 쪄서, 파리가 나도록 쳐서 녹말가루를 묻혀 0.5센티미터 두께로 민다. 산자는 가로3, 세로4센티미터, 강정은 가로 1, 세로 4센티미터, 빙사과는 잘게 절어 잘 말린다. 낮은 온도의 기름에 넣어 천천히 부풀리면서 높은 온도의 기름으로 옮겨 바삭하게 튀겨 내어 기름을 뺀다. 꿀물에 담갔다가 잣, 흰깨, 튀밥 부순 것을 고물로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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