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늙고 지친 부처님

難勝 2010. 10. 21. 06:43

늙고 지친 부처님

 

                                                                    주경(서산 부석사 주지)스님

 

석가모니 부처님의 최후 모습과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 <열반경>이다.

 

다른 어떤 경전보다 <열반경>을 읽다 보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거친 호흡이 느껴지는 늙고 지친 부처님의 모습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며 가슴이 메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아파하는 제자들과 함께 울고 몸부림치고 싶은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늙고 지친 육신을 가다듬어 의연하게 제자들을 대하고, 간절하고 진지하게 마지막 가르침을 내리는 담담한 모습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딛고 승리한 위대한 성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불교를 어떤 절대자의 종교가 아닌 '인간의 종교'일 수 있게 하고 2,600여 년 인간의 종교로 맥을 이어올 수 있는 힘을 <열반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열반경>의 한 대목이다.

"자, 아난다여! 가사를 네 겹으로 깔아라. 피곤하니 조금 쉬고 싶다." "아난다여! 물을 길어다 다오! 나는 목이 몹시 말라 물을 마셔야만 하겠느니라."

 

불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처님에 대한 시각은 상당히 좁고 편향된 경향이 있다. 법당의 높은 탁자에 앉아 금빛 빛나는 상호(相好)로 중생을 내려다보시는 위대한 부처님, 일부 다른 종교에서는 '우상'이라고 매도하는 대상화한 부처님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다. 이런 접근 불가능한 고귀한 부처님에 대한 고정관념과 인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열반경>을 접했을 때 무척 당황하게 된다.

 

'신(神)'인줄 알았는데, 아니 신보다 더 위대하고 영험 한 줄 알았는데, 인간이라니. 늙고 병들고 고통 받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니! 대부분 사람들이 황당함과 혼란스러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경전의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이 잘 살피지 못했거나 금빛 고귀한 외형에 사로잡혀 진정한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법하신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병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앓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싫어서 피해 버린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앓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앓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병든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또 어리석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늙은 사람을 보면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노인을 싫어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결코 당신 자신도 세상의 질서와 흐름에서 예외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병이 들 수 있고, 늙어가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붓다(Buddha)', 근래 불교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친근하게 쓰이는 용어의 하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간적인 삶과 인간으로서의 가르침에 주목하다 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인간 붓다'를 받아들이게 된다.

 

현대 서양에서 명상과 선(禪)에 대한 관심으로 불교에 가까이 왔던 사람들이 바로 '인간 붓다'에 매혹되어 불교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사회적으로도 선진화된 곳, 복지가 보장되고 개인의 개성을 무척이나 존중해 주는 풍토에 흠뻑 젖어있는 곳이다.

 

이미 신격화(神格化)되어 탁자 위에서 먼지를 쓰고 앉아 인간과 거리가 많이 멀어진 동양의 부처님보다 늙고 지치고 피로한 인간다운 '붓다'에게 새로운 시대가 매혹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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