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병든 황태후

難勝 2011. 3. 12. 05:19

 

 

병든 황태후

 

옛날 어느 나라 황태후가 몹쓸 병에 걸려 앓게 되었습니다.

"아, 이를 어쩌면 좋을꼬."

왕은 몹시 근심하여 이름난 의사들을 불러 치료하게 했습니다.

또 무당들을 시켜 굿을 하고 기도를 올리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날로 더해만 갔습니다.

 

왕은 생각다 못해 나라 안에 있는 200명의 바라문(고대 인도의 네가지 계급 중 가장 높은 지위인 승려 계급)을 궁중에 모셔 놓고 음식을 공양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님께서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바라문들께서는 지식이 많아 천지의 운행과 별자리 보는 법을 훤히 알고 계실 테니 어떤 잘못이 있어 그러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들은 서로 상의한 후 말했습니다.

"별들이 뒤섞여 음양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그럼 어떤 방법을 쓰면 병을 낫게 할 수 있을까요?"

"성밖의 평평하고 깨끗한 곳에 제단을 차려 놓고 해와 달과 별들에게 제사 드리고, 또 백 마리의 짐승과 어린애 하나를 죽여 하늘의 신께도 제사 그리십시오.

이때 왕께서 몸소 황태후를 모시고 제단 앞에 꿇어 앉아 절하면서 병이 낫기를 비십시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황태후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대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어린애 하나와 코끼리, 말, 소, 양 등 백마리의 짐승을 제단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러자 길에는 슬픈 울음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쳤습니다.

 

어린애의 부모와 친척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통하게 울어댔고, 이를 가엾게 여긴 마을 사람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또 짐승들도 곧 죽게 될 운명을 느끼고 소리 높여 울부짖었습니다.

마침 그때 부처님께서 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어리석은 바라문과 왕의 행위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급히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부처님은 마침 성밖에서 왕과 바라문 일행을 만났습니다.

또 슬피 울면서 지나가는 어린애와 짐승들도 보았습니다.

느닷없이 부처님과 제자들이 나타나자, 왕은 얼른 수레에서 내려 부처님께 예배한 후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있을 제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곡식을 얻으려면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또 큰 부자가 되려면 널리 베풀어 공덕을 쌓아야 하고, 장수를 누리려면 늘 큰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지혜를 얻으려면 항상 묻고 배우며 공부해야 합니다.

이는 즉 늘 착한 일을 행해 공덕을 쌓아야 원하는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왕께서는 무슨 일을 하려 합니까?

왕께서는 지금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고 많은 생명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의 신조차 좋아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 생명을 구하려고 무수한 생명을 죽이겠다는데 하늘의 신인들 도와주겠습니까?

이러한 잔인한 제사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생명에게 죄를 짓는 일일 뿐입니다."

 

이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네 줄로 된 짧은 시)을 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이런 저런 귀신들을 열심히 섬기며

코끼리와 소와 양으로 제사까지 지내네.

하지만 이 모든 것, 한 번 자비를 베푼 것만 못하네.

 

왕은 부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앓던 황태후도 몸과 마음이 상쾌해져 병이 모두 나았습니다.

 

200명 바라문들도 바른 가르침을 듣고는 몹시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들은 당장 자신들의 허물을 뉘우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청했습니다.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이들을 모두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람의 목숨이나 짐승의 목숨이 그 근원에 있어서는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오로지 인간의 목숨만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중심의 편협한 사고일 뿐입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려면 인간 중심의 사랑에서 생명 본위의 사랑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인간만이 우리가 아니라, 목숨 있는 모든 생물들까지 우리라는 표현에 함께 넣어 주어야 합니다.

 

요즘처럼 자연보호운동이 널리 번지고 있는 때에도 외국까지 나가 뱀, 노루, 자라, 두더지, 오소리는 물론 까마귀, 뜸부기, 물개까지 사먹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아도 먹을 게 많은데 이런 것들까지 먹어야 하다니, 짐승들 보기가 실로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그것도 외국까지 나가서 말입니다.

하기야 자기네 집에서 기르던 개까지 때려잡아 삶아 먹는 풍습이 남아있는 우리 형편이니 더 말한들 소용이 없는 일이겠지요.

 

용서하시라, 사람에게 잡아 먹히고 있는 무수한 동물들이여!

사람들의 분별없는 식욕을 용서하시라.

너희가 오늘날의 사람보다는 몇 갑절 더 너그러우니 인정사정 없는 이 사람들을 부디 용서하시라.

 

-법정스님이 들려 주는 [참 좋은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