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김제 청운사(靑雲寺)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

難勝 2011. 8. 22. 06:16

 

 

올해 연꽃 지금이 제철

 

장마에 밀려 이제사 피기 시작한 연꽃, 김제시 하소백련지를 가보다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려고 꽃잎을 활짝 펼친 연꽃을 향해 꿀벌이 달려들고 있다.

그럴 것이다, 사람도 그 은은한 단내에 홀려 끌려갔으니.

 

전북 김제시 하소백련지의 셀 수 없이 많은 백련 송이 중 하나이다.

연꽃만큼 동양에서 널리 사랑받아온 꽃도 드물다. 유가(儒家)에서는 흙탕물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운다 하여 귀하게 여겼고, 불가(佛家)에서는 속세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이 극락세계를 상징한다고 아꼈다. 혼탁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꿋꿋한 고결함이 연꽃의 덕(德)인 셈. 이 덕을 연꽃 중 가장 상쾌하게 드러내는 건 아무런 색깔로도 물들지 않은 흰 연꽃, 그러니까 백련(白蓮)일 것이다.

 

드물게 백련만 심은 연밭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북 김제시 청운사(靑雲寺) 앞에 있는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를 찾았다. '새우가 알을 품은 모양의 땅에 있는 백련 연못'이란 뜻이다.

 

백련이라 해도 대개는 꽃잎 끄트머리가 분홍빛 혹은 붉은빛으로 물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 2만여 평 연밭을 꽉 채운 백련은 순수하게 흰빛이었다. 어찌나 하얗던지 꽃잎과 꽃잎이 포개지는 부분이 푸르스름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소백련지를 관리하는 도원(道源) 스님은 "흰 연꽃의 원종(原種)"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연꽃은 대개 종자를 개량한 교배종입니다. 연근 수확을 목표로 백련과 홍련(紅蓮)을 교배시켜 만들었지요. 백련 원종은 연근이 작아요. 홍련의 연근은 엄청 커요. 길이 15㎝까지도 자라지요. 백련 연근은 4분의 1도 되지 않아요. 3~4㎝를 벗어나지 않지요."

 

도원 스님은 벼농사를 대신할 대체작물로 지난 2000년부터 청운사 앞 계단식 논에 주변 농가들과 함께 백련을 심었다. 연은 버릴 게 없는 알뜰한 식물이다. 연근과 연밥은 먹고, 연잎과 꽃잎으로는 차를 덖는다. 꽃대와 줄기는 한약재로 쓰인다. 그리고 하소백련지에서는 연꽃이 핀 2001년 여름부터 매년 연꽃축제를 열어왔다. 도원 스님은 "약용·식용·차(茶)용으로는 백련 원종이 제일 좋다"고 믿는다. 스님이 차갑게 식힌 연잎차 한 잔을 권했다. "향이 은은하면서도 깊거든요. 홍련은 너무 강해서 입안이 얼얼할 정도지요."

 

연꽃은 원래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가 가장 성(盛)하다.

도원 스님은 "올해는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가 최고일 것"이라고 했다. "(연꽃이) 이제사 피기 시작했어요. 장마가 일찍 오고 오래가서 연꽃이 제대로 피지를 못했어요." 그러니까 올해는 지금이 연꽃 감상하기 가장 좋은 철인 셈이다.

 

10년 넘게 재배하다 보니 연꽃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도원 스님을 따라다니며 연꽃 설명을 들었다.

 

"연꽃은 해가 뜰 무렵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 오전 10시쯤이면 완전히 개화합니다. 그랬다가 오후 서너 시부터 닫히기 시작해서 다섯 시 반이면 완전히 오므라들지요. 이렇게 아침이면 꽃잎을 벌렸다가 저녁이면 닫기를 4~5일간 반복하죠. 그리고는 꽃이 집니다. 태양의 뜨거운 기운을 받아들여 연밥, 그러니까 씨를 만들기 위해서지요."

 

"그럼 연꽃을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아침이 좋겠네요?"

 

"그렇지요. 새벽 연꽃잎이 벌어질 때는 연꽃향이 진하죠, 아주 좋지."

 

스님 말씀에 혹하여 김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 하소백련지를 다시 갔다.

연못에 가까이 갈수록 연꽃 향기를 확실히 맡을 수 있었다. 달지만 은근해서 역하지 않은 향기가 연못을 채우고 주변으로 흘러 넘치는 듯했다. 수만 송이 연꽃들이 떠오르는 해를 맞아 꽃잎을 조금씩 열려고 하는 중이었다. 꽃잎을 민망할 정도로 활짝 펼친 오후 뙤약볕 속 연꽃보다 고상했다.

 

이 향기를 흡입하면 내 몸도 맑아질까.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서 서울로 돌아왔다.

 

 

여행수첩

 

하소백련축제는 오는 15일까지 열렸다. (063)543-1248, www.baekryon.com

 

하소백련지 내 '수자타'는 연음식전문점. 연밥·찰밥·잡곡 등을 연잎에 싸서 찐 백련자반(8000원), 연잎물에 반죽한 국수와 가늘게 썬 연잎을 고명으로 얹은 백련칼국수(6000원)가 괜찮다.

 

연잎을 덖은 '하소백련차 잎차'는 은은한 단맛과 청량감이 훌륭하다. 연잎차 소(40g) 8000원, 대(80g) 1만6000원. 연의 모든 부위로 만드는 '하소백련차 정차'는 소(50g) 2만원, 대(100g) 4만원. 연잎을 이용해 담근 된장은 짜지 않으면서 단맛이 난다. 5년 숙성시켰는데 1㎏에 1만2000원이면 아주 저렴한 가격이다.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