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탁발(托鉢)

難勝 2010. 10. 16. 04:38

 

 

탁발(托鉢, Pindapata)

 

승려가 마을을 다니면서 음식을 구걸하는 일.

걸식(乞食)으로 번역하며 지발(持鉢)·봉발(捧鉢)이라고도 했다. 중국에서는 송(宋)나라 때부터 탁발로 통했다. 탁발은 인도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수행자의 풍습이 불교에 도입된 것인데, 중국·한국의 불교에서, 특히 선종에서는 수행의 일환으로도 간주된다. 본래의 취지는 수행자의 간소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버리게 하며, 속인에게는 보시하는 공덕을 쌓게 하는 데 있다.

 

탁발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다. 걸식을 하며 수행자는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운다.

 

걸식 통해 下心 - 절제 - 인욕 정신 배워

조계종 1964년부터 탁발 금지…정신만은 오롯

 

과거엔 탁발하러 다니는 스님들이 종종 있었다. 이 집 저 집을 돌며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하면 웬만한 집에선 기꺼이 쌀이나 기타 음식물을 보시했다. 흔한 풍경이었다. 한때는 이같은 탁발이 아름다운 생활문화였지만 조계종에서는 지난 1964년부터 종단 차원에서 탁발을 금지했다. 스님들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탁발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님도 아니면서 스님행세를 하며 탁발제도를 악용해서 돈을 벌거나 먹을 것을 얻는 ‘사이비 승’, 이른바 ‘땡땡이 중’이 득세한 것도 주요 원인이다. 물론 사회 경제가 쌀 등 현물에서 화폐로 옮아간 것도 탁발이 사라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 등지에서는 이 탁발문화가 오랫동안 존속됐다. 신도수가 많지 않은 산골이나 시골의 작은 절은 여전히 탁발을 통해 양식을 조달했다.

 

산스크리트어 ‘pindapatad’의 음역인 ‘빈다파다’에서 따온 탁발은 불교 고유의 풍습은 아니다. 불교가 발생할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출가사문의 생활수단이었다. 탁발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다. 걸식을 하며 수행자는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운다. 배고픈 고통을 견디면서 인내심을 키우고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존귀한 가치인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수행자의 기본덕목인 하심(下心), 절제, 인욕의 정신이 탁발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잡아함> 제39권 ‘걸식경(乞食經)’에는 부처님이 마가다국의 어느 마을에서 아침공양을 얻기 위해 탁발을 나갔다가 빈손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분율>에도 부처님이 탁발에 대해 강조한 내용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잘 대해준다고 한 집에 너무 자주 가지 말며, 좋은 음식을 탐하지 말라. 밥 달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주지 않은 음식은 먹지 마라.” 역대 큰스님들의 탁발이야기도 전해온다.

 

성철스님, 청담스님, 향곡스님은 어느 날 함께 탁발을 나갔다가 병든 노인이 혼자 사는 집을 발견하고는 하루종일 탁발한 음식을 모두 그 집 솥에 담아두고 나왔다. 이외에도 탁발한 음식을 걸인이나 가난한 집에 다시 보시한 이야기는 수도없이 전해진다. 지난 2004년부터 도보로 전국을 순례한 도법스님(전 실상사 주지)의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탁발문화에 ‘생명평화’라는 현대적 화두를 얹은 새로운 유형의 ‘탁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