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불교학 - 원측의 유식사상 통일신라시대 교학연구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원측(613~696년)이었다. 전기에 의하면, 원측은 신라의 왕족 출신이었다고 한다. 3세에 출가한 후 10여 세의 나이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에서 여러 유명한 불교학자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범어와 서역 여러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 尋劍堂 2007.09.08
9월 8일 자료입니다. 2007년 9월8일 자료입니다. 지난 주에 계속해서 啓請文부터 시작하겠습니다. 稽首觀音大悲主(계수관음대비주) 자비하신 관세음보살님께 경례하옵니다. 願力弘深相好身(원력홍심상호신) 원력이 너르고 깊으시며, 상호 거룩하사 天臂莊嚴保護持(천비장엄보호지) 천손으로 중생을 돌보시고 天眼光明遍.. 尋劍堂 2007.09.07
통일신라의 불교학 - 승려의 해외 구법 활동 통일을 전후하여 신라의 학승들은 부처님 법을 배우기 위하여 중국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갔다. 아리야발마와 혜업은 진평왕 무렵 중국을 거쳐 인도로 가 부다가야의 보리사와 마라난타사에서 연구하고 사경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통일 후 성덕왕대(702~732년)에 혜초(慧超)는 일찍이 당나라.. 尋劍堂 2007.09.07
통일신라의 불교학 - 불교의 대중화 통일신라에 들어와 정치이념으로서의 불교의 영향력은 축소되었지만 불교의 사회적 비중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통일기에는 일반대중들의 불교신앙에 대한 참여가 확대되어 불교가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불교가 주로 왕실이나 귀족들을 .. 尋劍堂 2007.09.06
업경대 아주 아득한 옛날, 염라대왕이 명부로 사람들을 불러들여 살아서 지은 죄를 심판하고 있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극락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한데 염라대왕 앞에 불려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죄는 조금도 짓지 않고 좋은 일만 했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 사람사는 이야기 2007.09.06
통일신라의 불교학 - 왕실의 불교관 신라에 의해 삼국의 통일이 이뤄지면서 사회는 크게 변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불교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불교계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불교의 정치이념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었고, 그 대신에 개인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측면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의 불교는 .. 尋劍堂 2007.09.05